주한 미8군 제2항공연대 소속 킴벌리 빌(여) 하사와 브래들리 해런 일병은 11일 부대로 돌아가던 중 눈길에 전봇대를 들이받아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승합차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즉시 차를 멈추고 구조 활동을 벌이는 한편 부대에 전화를 걸어 한국인 병사에게 119 신고를 부탁했다. 많은 차량이 사고 현장을 지나쳤지만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멈춘 경우는 없었다.
찌그러진 문을 떼낸 뒤 부상자를 끌어내려고 할 때 한국인 2명이 다가왔으나 빌 하사가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 발길을 돌렸다. 10∼15분 뒤 구조대가 도착했다.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지만 빌 하사와 해런 일병의 신속한 신고와 구조 활동 덕에 승객 3명은 목숨을 구했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장을 목격한 미 메릴랜드대 한국분교의 존 휘어 교수가 미군 성조지(紙)에 e메일로 제보해 알려졌다. 휘어 교수는 “그들은 훌륭한 군인이었고, 따뜻한 마음으로 인간이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고 칭찬했다.
한국인들은 모두 지나쳐 가는데 주한미군이 부상자를 살리려고 애를 썼다니 당혹스럽다. 주한미군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세력이 이번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들은 2002년 효순, 미선 양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자 순수한 추모 차원을 넘어 반미감정 고조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호기로 여겼다. 그들이 주한미군을 더는 편협한 ‘이념의 홑눈’으로 보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지난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대선 때는 반미감정이 절정을 이뤘지만, 요즘은 깜짝 놀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들 두 병사처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주한미군과 그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한국인이 많아진다면 분위기는 더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