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혼드리치 신간 내용 바보스럽고 동정심 느껴”
美 맥긴 교수, 격식에 벗어난 감정적인 언사로 물의
누리꾼들 “지적인 범죄” “솔직한 토로” 논쟁 가세
‘서평’으로 촉발된 두 저명 철학자의 논쟁이 영국과 미국의 지성계를 달구고 있다.
논쟁의 당사자는 미국 마이애미대의 콜린 맥긴(57) 교수와 영국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UCL)의 테드 혼드리치(74) 명예교수. 옥스퍼드대에서도 철학을 가르쳤던 맥긴 교수는 마음과 육체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 철학’에 정통한 학자로 이름이 높다.
혼드리치 교수는 ‘의식은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외재론’을 이끄는 학자. 28명의 사상가를 소개한 ‘철학자들’이란 책은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논쟁은 맥긴 교수가 지난해 7월 혼드리치 교수의 책 ‘의식에 관하여(On Consciousness)’에 대해 “진부하고 바보스럽고 나쁜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고 혹평한 데서 비롯됐다. 혼드리치 교수는 최근 e메일과 블로그 등을 통해 반박에 나섰고, 이에 대해 맥긴 교수의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관심을 기울이는 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논쟁은 인터넷 등을 통해 더욱 확산되고 있으며 영국의 가디언과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최근 이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맥긴의 혹평, 혼드리치의 응전=맥긴 교수는 코넬대가 발간하는 학술지 ‘철학 비평’에 혼드리치 교수의 ‘의식에 관하여’에 대해 나쁜 말을 총동원하는 듯한 어투로 혹평했다. 맥긴 교수는 “(그 책이) 극도로 지식이 부족하고, 터무니없고, 논리에 허점이 있으며, 진부하고, 요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그의 노력이 조잡하고 부적절하고 비참하다는 사실에 동정심을 느낀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혼드리치 교수는 “한 철학자의 명성을 말살하려는 계산된 시도”라며 “그는 내가 책에서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를 하면서 비평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맞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맥긴 교수에게 e메일을 보내 항의하는 한편 ‘철학 비평’에 반론을 실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상(思想)의 적(敵)들=가디언은 두 학자가 ‘의식’을 설명하는 데서 양극단에 서 있다고 전했다. 가장 논쟁이 심한 주제를 놓고 일찍부터 부닥쳐 왔다는 것이다.
혼드리치 교수는 ‘의식에 관하여’를 포함한 저서나 논문 등을 통해 “외부의 실재(實在)에 대한 사람의 의식은 바로 그 외부의 실재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해 왔다. 누군가 현재 자신이 있는 방을 ‘방’으로 인식하는 것은 그 방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는 이렇듯 의식을 규정함에 있어 외부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스스로를 ‘급진적 외재론자(radical externalist)’로 부른다.
이에 대해 맥긴 교수는 “외부와의 관계만으로 의식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혼드리치 교수를 향해 “당신은 당신 없이는 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방은 분명히 실재하는 대상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맥긴 교수는 더 나아가 ‘의식’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정 철학적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신 신비주의(New mysterianism)’를 대변하고 있다.
논박이 오가자 혼드리치 교수는 “외재론은 의식의 주체를 배제하는 이론과는 다르다고 대응했다.
이처럼 사상의 차이가 맞대결로 이어진 사례는 철학사에 적지 않다.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로 엇갈린 헤겔과 쇼펜하워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이 베를린대에서 함께 강의할 때 쇼펜하워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대우받던 헤겔에 대해 “이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게 있다”며 시비를 걸었다. 그는 더 나아가 같은 시간대에 철학 강좌를 여는 방식으로도 맞섰지만 헤겔에게 수강생이 몰리며 완패했다.
▽서평의 한계 논란=논쟁이 확산되면서 ‘서평의 한계’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 철학 블로그에선 “지적인 범죄 수준의 비평을 통해 맥긴 교수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모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비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개인적 원한이 의심된다” “맥긴은 자신의 학문에 대해 완벽한가” 등의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모호한 서평보다 이런 서평이 독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된다” “철학자가 다른 이의 사상을 우습게 생각했다면 그것을 그렇게 말하는 게 잘못인가”라며 맥긴 교수의 편을 드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혼드리치 교수는 서평에 개인적 감정이 개입됐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두 사람이 25년 전 UCL에서 동료 교수였을 때 혼드리치 교수가 맥긴 교수의 새 애인에 대한 얘기로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혼드리치 교수는 “(맥긴 교수의 새 애인이) 옛 애인보다 예쁘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때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고 전했다. 그러나 맥긴 교수는 “철학적으로는 생각이 달랐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다툰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