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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경제]크기… 기능… 제품 가격 무엇이 결정하나

입력 | 2008-01-23 02:51:00


수요-공급 동시 작용… 엿장수도 엿값 맘대로 못하죠

사례:

경제 교육을 정식으로 받아본 적이 없는 민지 엄마는 며칠 전에 난감한 일을 겪은 뒤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경제 교육을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초등학생 딸 민지와 친구들이 집에서 놀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재미있게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다투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실수로 장난감을 부숴 버린 것이었다. 민지 엄마는 비싸지 않은 장난감이어서 다행이라 여겼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장난감을 부쉈으니 물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장난감 주인은 자신이 제일 아끼던 것이니 돈을 많이 물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요 조그만 장난감이 뭐가 그리 비싸니?” 장난감을 부순 친구가 토라지며 말했다.

“장난감 크기가 중요하니? 작더라도 비쌀 수 있어!” 장난감 주인이 소리쳤다.

“아니야. 우리 막내삼촌이 타시는 작은 차보다 우리 아빠가 타시는 큰 차가 더 비싸. 또 버스가 승용차보다 훨씬 비싸고, 큰 집일수록 더 비싸잖아. 그러니까 크기가 클수록 비싸지는 거야.” 이렇게 다양한 예를 들면서 가격이 크기에 비례한다고 주장하는 아이도 있었다.

민지는 색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하는 일이 많을수록 비싸져. 주전자는 물만 끓일 수 있으니까 싸지만 냉장고는 물이나 음식을 보관하고 얼음도 만들 수 있으니까 비싸잖아.”

대화를 듣고 있던 장난감 주인은 자신이 수세에 몰리는 듯한 느낌이 들자 다른 예를 제시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다이아몬드 반지가 제일 비싸대. 다이아몬드 반지는 크기가 작더라도 비싸잖아. 또 반지는 손에만 끼고 다니는 데도 비싼걸?”

제법 그럴듯한 예를 들었다고 생각한 장난감 주인은 목소리를 높이면서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면 비싸지는 거야. 내 장난감도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비싸.”

민지 엄마가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으라며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다툼은 끝없이 이어질 분위기였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민지 엄마도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을까. 물건의 가격은 무엇이 결정할까.

이해:

아이들의 다툼 이상으로 시끄러운 게 경제학자들의 가격결정 요인에 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비자의 만족도에 따라 재화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사과 1개와 생선 1마리의 비율로 교환되겠지만 생선을 무척 먹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사과 2개를 주고서라도 생선 1마리와 교환할 것이다.

이처럼 당사자의 필요에 따라 교환 비율이 결정되므로 효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른바 ‘효용 가치론’이다.

효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주장은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밀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동량에 비례해서 물건 가격이 비싸진다는 주장이다. 책상을 만드는 데 1시간이 걸리고 컴퓨터를 만드는 데 3시간이 걸리면 컴퓨터 가격은 책상 가격의 3배가 된다. 이를 ‘노동 가치론’이라 부른다.

효용 가치론은 소비자의 수요 측면을 중요시하고, 노동 가치론은 기업의 공급 측면 또는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중요시하는 이론이다. 둘 가운데 어떤 것이 맞을까.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이 질문에 답하면서 가위의 양날에 비유했다.

“종이를 자르는 게 가위의 위쪽 날인지 아니면 아래쪽 날인지 우리가 논쟁할 수 없는 것처럼 가치를 결정하는 게 효용인지 생산비인지 논쟁할 수 없다.”

그는 가위의 양날이 동시에 작용해 종이를 자르듯이 수요와 공급의 힘이 함께 작용해 물건의 가격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후 수요와 공급의 힘이 모두 반영돼 물건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데에 대부분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생산자 혼자서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유행어를 남긴 엿장수조차도 엿 값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엿장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만큼의 돈을 받고 손님에게 덤으로 엿을 얼마나 더 줄지를 결정하는 일 뿐이다.

한 진 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