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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책 읽으면 물질적 행복도 따라옵니다

입력 | 2008-01-24 03:05:00

22일 오전 충북 청원군 가덕초교에서 올해 첫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이를 기념해 정호승 시인(가운데)이 가덕초교를 방문해 학부모와 교사를 상대로 특강을 열고 “요즘처럼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에겐 부모가 책 읽는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원=정양환 기자


《“어릴 때 아버지가 세계문학전집을 사다 놓았어요. 하지만 읽으라고 강요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냥 당신께서 읽으며 즐거워하셨죠. 그러니 저도 궁금해서 자연스레 펼치게 됐어요. 도서관도 마찬가집니다. 함께 다니며 부모님이 먼저 책을 보세요. 아이도 따라 읽습니다.” 22일 오전 10시경 충북 청원군 가덕초등학교 도서관. 눈송이가 떨어지는 아침부터 30여 명의 학부모와 교사가 학교에 모였다. 끄덕끄덕, 귀를 쫑긋 세운 모습.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의 시를 쓴 정호승(58) 시인 앞에서 모두들 영락없는 학생으로 돌아갔다. 이날 가덕초교는 정 시인과 더불어 뜻 깊은 선물을 맞았다. 그건 기다리던 학교마을도서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과 본보, 네이버가 함께하는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의 2008년 첫 개관식이 열린 것이다. 》

○ 책은 정신과 몸을 모두 살찌운다.

1시간가량 진행된 정 시인의 특강 주제는 ‘시 읽는 즐거움, 책 읽는 행복’. 예술의 정신적 행복에 치중하지 않고 ‘책이 물질적 행복도 동반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이채로웠다.

“시력을 상실한 걸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이에게 적선하라’고 했다면 아마 다들 무심코 지나쳤을 거예요. 그런데 그 양반이 ‘전 내년 봄이 와도 꽃을 보지 못하오’라고 합디다. 너도나도 한 푼씩 쥐여줬어요. 글과 문학의 풍취가 그런 겁니다.”

정 시인 역시 책을 읽었기에 삶이 풍요로웠다. 문학 장학생으로 대학도 갔고, 시를 통해 사람을 얻었다. “문학과 상관없는 일에도 독서는 힘을 발한다”고도 했다. 직장인이 돼 서류를 작성하고 과학자가 실험을 할 때도, 문학적 상상력을 지닌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

그런 면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학교마을도서관은 ‘소중한 기회’라 강조했다. 아이가 도서관을 편안히 여기려면 어른부터 삶의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훈맹정음’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시각장애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만든 점자책입니다. 선생은 평생 시력을 잃은 이들이 얼마나 글에 목말라 하는지 이해하셨죠. 볼 수 있는 눈과 힘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 올해도 한 달에 2, 3곳 이상 개관

정 시인의 특강에 이어 학교 강당에서는 가덕초교 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학교마을도서관으로는 전국 97번째. 연말연시에 잠깐 휴식기를 가졌던 개관식이 ‘2008년 1호점’ 가덕초교를 시작으로 다시 힘찬 출발을 알렸다.

이날 가덕초교 도서관에는 어린이 책과 성인 책 등 모두 3000여 권이 전달됐다. 김 대표는 “주민 500여 명의 청원을 받아 올해 첫 학교마을도서관 개관식을 여기서 열게 됐다”면서 “열심히 읽고 또 신청한다면 힘 닿는 대로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을우 가덕초교 교장도 “열악한 시골이지만 교과와 연계한 도서관 이용 수업 개설 및 학부모 도서도우미를 활용한 ‘도서관 사랑방’ 운영 등으로 학교마을도서관의 취지를 잘 살리겠다”고 화답했다.

28일에는 충북 제천군 봉양초교에서 올해 두 번째 개관식이 열릴 예정. ‘작은 도서관…’의 변현주 사무국장은 “올해도 한 달에 2, 3곳 이상씩 전국 50여 곳에 문을 열 예정”이라면서 “도서관 개설에 그치지 않고 명사들의 특강, 문화공연 등을 연계해 학교마을도서관이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청원=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