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의 존폐 문제로 시끄러운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폐지안은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심의에서 협상의 ‘빅딜 카드’가 되리란 소문도 있다. 그러나 나는 소수 의견이 될지 모르지만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통일부 폐지가 가장 신선하고 훌륭한 안이라 생각한다.
왜 통일부 폐지에 찬성하는가. 통일문제는 일개 통일부 장관에게 맡기기엔 너무나 중대한, 나라의 근간이 좌우되는 문제이다. 그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헌법 67조 3항) 대통령의 정무에 속한 사안이다. 변개를 거듭하는 헌법의 자구를 떠나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 통일정책은 세 분의 대통령에 의해서 그 대강이 결정돼 왔다.
첫째 단계는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 통일정책(‘실지회복’ 정책).
둘째 단계는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 유보정책(‘선 건설, 후 통일’).
셋째 단계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유화정책(‘햇볕정책’).
그 모두가 대통령의 국정 기본 구상에서 나온 것이요, 일개 각료의 발상이나 정책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딴은 1960년대 말까지도 우리 정부조직에는 통일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도 없었다.
통일부 폐지하는 案 찬성한다
그 부서가 ‘국토통일원’이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 봄이었다. 참으로 흥미로운 역설은 분단국 한국에서 그때까지 없었던 국토통일원을 창설한 바로 그해 분단국 서독은 그때까지 있었던 ‘통독성’을 없애고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양독성’을 설치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얄궂은 역사의 역설은 ‘예측 가능한 미래’엔 불가능하다면서 통일을 단념하고 통독성을 없앤 서독은 그로부터 불과 20년 뒤인 1989년 베를린 장벽과 동서독의 경계선이 열리고 이내 다음 해엔 평화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사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1969년 통일원을 새로 마련해 그때부터 이날까지 자나 깨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말까지 실속 없이 구호만 요란했던 북진통일방안은 김일성의 남침전쟁 실패 이후론 더는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박 대통령이 추진한 ‘후 통일’이란 유보 정책은 강력한 ‘선 건설’의 추진으로 남북한의 경제적 위상을 역전시키고 이후 통일문제에 있어 한국의 발언권을 높여 놓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국내에선 통일의 환상을, 그러나 국외에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를 잠깐 일깨워주었으나 결과는 이내 남북의 갈등에 더해 새로운 남남갈등까지 빚고 말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오늘날 우리에겐 어떤 ‘현실적’인 통일 방안도 없다. 현대사가 입증해준 분단국의 통일방안은 둘뿐이다, 베트남 식의 무력통일방안과 독일식의 평화통일방안이다. 무력으로 한쪽의 체제를 괴멸시키거나 평화적으로 한쪽이 스스로 괴멸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무력통일방안은 적어도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이미 폐기됐다. 평화통일방안은 ‘흡수 통일’이라 누군가 멋대로 풀이해서 명명한 뒤론 우리 스스로 얼떨결에 폐기해버리고 말았다. 그 밖에 그럼 무슨 통일 방안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통일부가 지난날 해온 일이란 북이 홧김에 전쟁을 일으킬세라, 혹은 북의 체제가 붕괴될세라, 그래서 ‘흡수통일’을 하게 될세라 조마조마하며 오직 북의 체제 유지에 온갖 정성을 다해 왔다. 바꿔 말하면 통일원은 실인즉 한반도의 양국체제 유지에, 분단의 현상 유지에, 바로 비(非)통일의 유지를 위해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이다. 그러한 일을 ‘통일’의 미명하에 한다는 것은 국민을 오도한다는 점에서도 그만둬야 한다. 그러한 일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물론 한반도의 평화는 통일 못지않게 치명적인 중대사다) 그때는 제발 ‘통일부’가 아니라 ‘대북사업부’ 또는 ‘민족지원부’ 같은 기구를 신설하는 것이 어떨까.
장관 아닌 대통령 권능으로 할 일
햇볕정책 실패의 교훈은 대북정책에선 어떤 변화나 결정도 여야를 초월한 국민적인 합의 도출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되고 그래야만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게 어찌 한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대통령의 권능으로만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