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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발해 항로 뗏목탐사대 4명 사망

입력 | 2008-01-24 03:05:00


1998년 1월 18일 오전 2시경 경북 포항시 앞바다. ‘발해 1300호’ 탐사대 장철수(당시 38세) 대장, 이용호(당시 35세) 이덕영(당시 49세) 임현규(당시 27세) 대원이 해양경찰대 경비함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주도까지 1300년 전 발해인의 해상교역 항로를 뗏목으로 쫓고 있었다.

발해, 한반도, 일본을 잇는 발해인의 옛 뱃길을 탐사해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발해인의 정신과 기상을 되살리고 우리 영토에 대한 인식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손전등 불빛에 비친 대원들의 얼굴은 허기와 추위에 지쳐 있었다. 그러나 눈빛에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번득였다. 해경 경비함은 이들에게 고추장 김치 배터리 등 보급품을 전하고 철수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1월 23일 오후 4시 14분경. 탐사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선으로 흘러나왔다. “파도가 계속 (도고) 섬 쪽으로 몰아치고 있어 자체 접안이 어렵습니다. 예인선을 불러 주세요!”

오후 8시 50분경. 다시 연락이 왔다. “예인선이 도착했습니다!” 안도의 순간도 잠시. 3시간 뒤 뗏목이 있는 일본 도고 섬 해역에 폭풍주의보가 발령돼 일본 해경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음 날인 24일 오전 7시 5분경. 대원들의 육신은 거친 파도에 사라졌다.

1997년 12월 31일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돛을 올린 지 24일 만에 발해인의 정신에 도전한 네 사람이 거친 뱃길에 스러진 것이다.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제주도까지 발해인이 오갔던 1244km 바닷길을 탐사하려 했으나 울릉도 앞바다에서 방향을 잃어 일본 쪽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뗏목엔 위성항법장치와 무선교신장비 등 최첨단 장비가 있었지만 심한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전복됐다.

거친 바다는 이들의 육신을 삼켰지만 그들의 정신은 오래오래 남았다. 후일 바다 속에서 발견된 항해일지의 1월 23일자엔 이렇게 적혀 있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

경남 통영시 미륵산 기슭에는 장 대장 육신의 일부가 묻힌 무덤과 ‘발해 1300호’ 추모비가 있다. 발해 1300호 기념사업회는 올해 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발해 1300호’ 10주기 기념식을 열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