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눈동자연기에 빨려들다
《중국은 내게 ‘패왕별희’의 나라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궈룽이 그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경극 배우의 몸짓을 잊지 못해 중국에 오면 경극부터 보리라고 벼르고 있었다.
베이징은 어딜 가나 공사 중이었다.
8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어서 도시 곳곳에서 낡은 건물을 부수거나 새로 짓거나, 아니면 다시 뜯어고치고 있었다. 》
○ 투명천장-호수통로가 있는 국가대극원 규모 상상 초월
새로 지은 건물 중 한 달 전에 공식 개관한 중국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톈안먼 광장과 인민대회당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우리로 치면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건물과 콘서트홀, 그리고 분수대가 있는 야외 뜰까지 커다란 돔으로 덮어놓은 것 같았다. 이 대형 돔을 넓은 인공호수가 감싸고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호수에 착륙한 우주선 같아 보였다.
입구는 호수 밑 지하연결통로를 통해 들어가게 돼 있었다. 천장이 투명해 머리 위로 흐르는 호수를 쳐다볼 수 있었다. 호수 아래 통로를 통해 건물 안에 가면 방대한 공연장이 있었고, 밖으로 나오면 호수가 있는 시민공원이 펼쳐졌다. 참으로 멋진 아이디어였다.
국가대극원의 티켓 가격은 보통 80∼380위안(약 1만∼5만3000원). 중국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긴 하지만 문화적으로 새롭게 비상하고 있는 거대 중국의 힘이 느껴진 곳이었다. 경극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중국 최고의 경극단으로 꼽히는 국가경극원(國家京劇院·중국경극원의 새 이름)이 상주하며 공연한다는 매란방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내부 수리 중이어서 1월 말까지는 공연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베이징 시내에 많은 차관(茶罐) 중 한 곳을 찾았다. 차관은 말 그대로 차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하는 곳인데 무대 등 시설은 일반 공연장과 똑같고 다만 객석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식탁 모양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보름 동안 매일 여러 차관을 다녀봤는데 모두 경극을 공연했다.
경극(京劇)은 베이징 지역에서 발달한 지방극의 한 형태인데, 창(唱:노래), 념(念:대사), 쭤(做:동작), 다(打:무술)로 구성된 전통극을 일컫는 말이다. 처음엔 그 독특한 창법과 과장된 움직임, 화려하고 복잡한 의상 때문에 무슨 얘기인지, 어느 배우가 잘하고 못하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보름 내내 매일 경극을 봤더니 조금씩 세밀한 동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경극 한 편 제대로 보려면 7박 8일 걸려
배우의 섬세한 손동작이며 안구를 빠르게 회전하며 고민하는 ‘눈동자 연기’가 조금씩 보였다.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동작이 나오면 무슨 동작이었는지 맞추는 재미도 있었다. 경극의 모든 동작은 생활 속의 동작들을 좀 더 과장되게 표현하는 거라고 했다.
스토리를 몰라도 경극은 얼굴 분장만으로도 캐릭터를 대충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얼굴을 까맣게 분장한 인물은 성격이 강직하고 지혜롭거나 힘이 센 캐릭터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판관 포청천이나 삼국지의 장비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나오는 캐릭터도 있는데 처음엔 빨간 얼굴이 괴기스럽고 무섭게 느껴졌는데 이곳에서는 정의로움을 뜻한다고 했다. 그래서 삼국지의 관우는 빨간 얼굴로 등장한다. 반면 귀신처럼 얼굴 전체에 하얗게 분을 바르고 나오는 캐릭터가 있는데 이는 간사하고 음험한 인물을 나타낸다. 누굴까? 삼국지의 조조가 바로 흰색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경극을 처음 본다면 황당해할 수도 있다. 도중에 끝나는 듯한 인상 때문이다. 경극은 중국의 유명한 소설이나 역사서에서 소재를 가져왔기 때문에 스토리가 길고 복잡하다. 그래서 종종 경극 레퍼토리 중 유명한 대목만을 골라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줄거리만 따라가던 관객들은 갑자기 다른 대목이 나오면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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