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順風)에 돛 단 듯 쾌속 항진하던 ‘이명박호(號)’가 장애물을 만났다. 표면적으로는 신(新)행정권력과 구(舊)의회권력 간 대립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앞세운 신권력과 그들의 가치를 지켜 내려는 구권력 간 갈등이다.
民意따르고 상식에 맞게
힘의 균형은 신권력으로 기운다. 국민의 표로 확인된 정통성 있는 힘이니까. 신구 가치의 대결에서도 우위(優位)를 지닌다.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한 새 가치이니까. 그러나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 제도화된 민주주의체제에서는 신권력이라도 전부를 취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야대여소(野大與小)의 의회임에야. 설득과 타협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거기에는 원칙과 조건이 있어야 한다. 민의(民意)와 상식이다. 정파의 이익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이념의 분식(粉飾)으로 민의와 상식을 뒤집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다. 대선에서 그렇게 공약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정부 조직을 축소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는 것은 민의에 따르는 것이다. 민주신당 측은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것에 동의하며, 부처 기능을 개편하고 슬림화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므로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통폐합되는 통일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여성가족부 등 5개 부서 모두를 ‘국가적 미래 비전’을 위해 살려야 한다고 한다. 부서를 줄이지 않고 어떻게 작은 정부를 만든다는 말인가. 비상식적인 소리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 술 더 떴다.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 내용이 내 철학과 소신에 충돌해 여기에 서명하고 수용할 수 있을지 책임 있는 대통령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새 정부 조직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새로운 집권 측의 철학과 소신에 따르는 것이지 물러날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새 정부의 정상적 출발을 위해 협조해야 한다. 그게 민의이자 상식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으면 “장관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인식도 옳지 않다. 그것은 국민 통합 노력이나 협력적 여야 관계와 거리가 먼 얘기다. 더구나 인수위 안이 모든 부문에서 무오류(無誤謬)라고 단정할 수도 없잖은가.
인수위 측은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합시킨 것은 “대외정책을 일관되고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북한 핵은 물론 남북관계 현안도 전체적인 외교정책의 맥락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차기 정부에서 확대될 남북 간 교류에 대비하고 그 다음 통일 단계까지 염두에 뒀다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경제협력이 적극적으로 되면 (정부) 모든 부서가 다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론자들은 남북한이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잠정적으로 우리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특수관계’임을 강조한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외교부에 ‘내교(內交)’를 해야 하는 통일부를 통합하는 것은 국정의 근본 기조에 맞지 않으며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통일 노력’이란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통일부는 존치(存置)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통일부가 보여 온 행태가 잘못됐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야지 아예 부서를 없애는 것은 단견(短見)이라고 비판한다.
당선인의 말처럼 정부 모든 부서가 남북 문제에 관여하게 될 경우 누가 통제하고 조율하고 관리할 것인가? 독립적인 전담 부서가 대통령의 지휘 아래 컨트롤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그쪽이 상식에 가깝다.
盧대통령과 DJ는 빠지시오
정치적, 이념적 개입은 삼가야 한다. 구권력의 핵심인 전직 대통령이 “통일부 안 없애면 나라 망하느냐”는 식의 직정적(直情的) 발언을 쏟아 내는 것은 오히려 실용적 논의를 가로막을 뿐이다.
내달 25일에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장관 없는 정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노 대통령과 DJ는 빠지고, 이명박 당선인과 손학규 민주신당 대표가 민의와 상식에 따른 ‘작은 정부’에 합의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다.
전진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