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이코노미/사샤 아이센버그 지음·김원옥 옮김/360쪽·1만5000원·해냄
손가락 2개만큼 뭉쳐 놓은 밥, 그 위에 올려진 날생선 조각.
스시 또는 초밥은 독특하다. 분식집과 특급 호텔을 넘나든다. 가격도 모양새도 천차만별. 대형 마트에서 카트를 끌다 집어 먹는가 하면, 다다미에 점잖게 앉아 격식 갖춰 오물거린다. 그런데 어디서도 어색하지 않다. 미국 뉴욕 고급 식당가건 일본 도쿄 24시간 편의점이건. 스르륵 지갑을 열게 한다.
저자가 보기엔 이게 간단치 않다. “20세기 후반에 돈, 권력, 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연결성을 규정짓는 문화의 흐름에 따라 발명된 요리”이기 때문이다. 뻔한, 혹은 단순해 보이는 이 일본 요리는 그 물결을 타고 세계로 퍼져 갔다.
‘스시 이코노미’는 그 초밥에 관한 책이다. 조막만 한 밥 한 덩이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지 해부한다. “오늘날 요리가 재료와 멀어지는 걸 불안하게 여기는 소비자를 위해 싸구려 프라이드치킨도 알 수 있는 (원산지와 공급자) 정보도 전혀 없는” 이 먹을거리의 속살을 들춰본다. 고추냉이 그 이상이 감춰진 ‘초밥 메커니즘’을.
저널리스트로 2년 동안 14개국을 돌아다닌 저자에 따르면 스시의 탄생은 보잘것없었다. ‘소금으로 간한 밥과 보관하는 생선’을 뜻하는 스시는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발효음식이었던 스시가 날생선 요리로 바뀐 건 19세기 에도 시대. 길거리에서 때울 간식거리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외로 눈을 돌리며 스시는 스스로 진화한다. 말 그대로 이원화 전략. 한편에선 날것을 혐오하던 서구인을 위해 게살과 아보카도를 넣은 ‘캘리포니아 롤’로 모습을 바꾼다. 다른 쪽에선 휘황찬란한 장식 아래 정통 방식을 강조하며 ‘참살이(웰빙)’ 고급 요리로 둔갑한다. 맞추거나 맞추게 만들거나. 그 힘은 20세기 활황을 맞은 일본 경제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스시 이코노미’는 초밥의 문화적 측면보단 이 경제 배경에 치중한다. 일본항공(JAL)이 캐나다산 참치를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수송 시스템에 주목한다. 참치의 주공급원이나 암시장, 그리고 거대시장 중국에서 어떻게 스시가 활로를 개척하는지 등에 저자는 눈길을 보낸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읽는 이에 따라 재미와 불만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저널리스트답게 스시 산업 관계자를 만나며 얻은 꼼꼼한 정보는 신선하다. 특히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춰 이야기를 진행해 현장감이 탁월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스시를 통해 글로벌 경제의 역학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이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유독 왜 스시가 그런 위치를 차지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그다지 명쾌하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그건 스시는 스시여서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지에 맞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고, 원래 일본에서도 그런 위치가 아니었음에도 고급 문화인 양 포장도 했다. “하나는 느리고 예측 가능하며 자본 집약적이고 다른 하나는 신속하고 기민하며 변화무쌍한 스시 교역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스시는 이런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 낸 ‘문화’였다. 원제 ‘The Sushi Economy’(1997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