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가총액 2위 은행 소시에테 제네랄(SG)이 24일 밝힌 49억 유로(약 71억 달러·6조6000억 원)의 금융사기 사건을 두고 세계 금융권 안팎에선 구구한 억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직원 한 명이 사기로 은행에 49억 유로의 피해를 입혔다’는 SG 측의 발표에 일제히 의구심을 표시했다.
프랑스 국가과학연구센터(CNRS)의 엘리 코엔 경제학 교수는 일간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은행 딜링룸(거래실)의 분위기로는 한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1년간의 숨겨진 손실로는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투자회사 글로벌 이쿼티의 이코노미스트 마르크 투아티 씨는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손실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자리를 잃게 된다”며 “1억∼2억 유로의 손실은 가능하지만 약 50억 유로의 손실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투자회사 아르케옹의 아르노 리브랭 주식연구팀장도 “딜러가 일할 때는 한 사람은 주문을 내고 한 사람은 전달하고 한 사람을 실행하는 식으로 적어도 3명이 개입한다”며 “문제의 직원은 고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SG는 아직까지 한 직원이 선물거래 매수 업무를 하면서 교묘한 기술을 사용해 은행 몰래 손실을 발생시켰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이 의심하는 것은 SG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입은 손실을 한 개인의 범죄행위에 의한 손실에 뒤집어씌웠을 가능성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건이 최근 전 세계적인 주가 폭락의 시발점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SG가 21일 주식 시장이 열리면서 선물 매입 옵션을 대거 처분했는데 이것이 유럽 증시의 ‘블랙 먼데이’에 영향을 미치고 전 세계적인 주가 폭락을 초래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FRB가 프랑스로부터 일찍 사건을 통보받고 서둘러 금리를 0.75%까지 인하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SG와 프랑스 중앙은행, 프랑스 정부는 한결같이 이번 사건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손실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력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의 의혹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많은 언론 매체들이 SG가 은행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인수합병(M&A)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프랑스 은행 사상 최대의 손실을 입힌 이번 금융사기 사건의 주역은 입사 8년차인 제롬 케르비엘(31·사진) 씨로 확인됐다.
프랑스 언론은 1995년 영국 베어링 은행의 파산을 불러온 닉 리슨과 비교해 SG에 49억 유로 이상의 손실을 입힌 케르비엘 씨를 ‘프랑스판 닉 리슨’이라고 이름 붙였다. 리슨의 사기 규모가 12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케르비엘 씨가 훨씬 더 큰 대도(大盜)인 셈이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