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5세 연장(年長)인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특사를 새 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하자 반대당들은 ‘올드 보이’라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달 초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한승수 전 장관을 우연히 만났다. 추워서인지, 속보(速步) 습관이 여전해서인지 그날도 걸음이 빨랐다. 목소리가 낮고 약간 느리지만 상대의 귀를 지긋이 붙잡는 ‘조곤조곤 어투’도 변함이 없었다. 큰길에서 한 5분 얘기 나누던 중 그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기대가 너무 큰 것도 같고. 나라가 잘되도록 도와주소!”라며 내 손을 아프게 꽉 잡았다.
안희정, 이광재 씨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을 때 37세의 ‘영 보이’였다. 노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인보다 10년 젊은 57세에 임기를 시작했다. 그 밑의 총리들이 취임할 때 나이는 고건 65세, 이해찬 52세, 한명숙 62세, 한덕수 58세였다. 노무현 청와대는 안희정, 이광재 씨와 ‘형, 동생’ 하는 386들로 가득 찼다. 이에 비하면 이명박 정부는 ‘역(逆)세대교체 정부’가 될 것이 틀림없다.
노 정권 386들은 행정부에서나 국회에서나 ‘영 보이’의 참신성과 가능성보다는 천둥벌거숭이의 무능과 시행착오를 더 많이 드러냈다. 운동권 경력 빼고는 보고 배운 바가 적은 사람들이 좌충우돌한 바람에 나라가 많이 멍들었다.
실력으로 겨룰 사람 나와 보기를
그 탓(덕)에 이회창 씨가 이명박 씨보다 6세 많은 72세에 대선 3수(修)를 강행했을 때도 정당민주주의를 훼손한 데 대한 비판은 매서웠지만 고령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제런토크라시(Gerontocracy·노인정치)를 할 리도 없다.
작년 9월 취임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는 한 총리 후보자보다 생일이 5개월 남짓 빠르다. 후쿠다 총리보다 18세나 젊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미숙한 국정운영 탓에 재임 1년 만에 물러나야 했다.
나는 1993년 3월 동아일보 도쿄특파원이 된 직후, 일본인들이 세대차(世代差) 나이차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 한반도문제 공부회(벤쿄카이·勉强會)에 초청돼 갔더니 20대 연구원과 60대 교수가 서로 존칭으로 ‘기무라 상(樣)! 요시다 상(樣)!’ 하고 부르며 격의 없이 토론을 했다. 오로지 정보와 분석 내용, 즉 콘텐츠만이 상호관심사였다.
한 총리 후보자에게 ‘올드 보이’ 딱지를 붙이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의 50∼60대 사람들에게 한 후보자와 등산이라도 한번 같이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또, 한 후보자만큼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외국 지도자와 전화 협상을 해낼 자신이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자천 타천으로 나서봐주었으면 좋겠다.
북한 정권의 얼굴마담 격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0세의 ‘올드 보이’다. 그를 만난 노 정부의 ‘영 보이’들이 젊음의 힘을 얼마나 잘 발휘했는지 기억에 없다. 백남순은 1998년 68세에 외무상에 임명돼 8년 4개월째 재직 중이던 작년 1월 77세로 사망했다.
미국의 명(名)대통령 가운데 존 F 케네디는 43세에 당선됐고, 빌 클린턴은 46세에 처음 당선됐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73세에 재선됐다. 1975년 43세에 최연소 미(美) 국방장관 기록을 세운 도널드 럼즈펠드는 2001년 다시 국방장관이 돼 74세이던 재작년 말까지 6년간 맹활약을 했다.
중국은 노장청(老壯靑)의 조화를 비교적 잘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다른 것은 1950년대 출생자들이 극좌파 홍위병의 광기(狂氣)가 휩쓸던 문화대혁명(1966∼76년) 기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국가 동량지재(棟梁之材)로 많이 크지 못한 데 비해, 60년대 출생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교육을 야무지게 받아 정관계(政官界)에 폭넓게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老壯靑이 상호 보완하는 정부
정부의 주력(主力)이 어떤 연령대라야 최적인지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국가운영에는 방향성(方向性)과 속도(速度)가 다 중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세대와 적지 않은 실패도 경험해 후회(後悔)도 많이 해본 노익장 세대가 상호 보완하는 정부가 대체로 적절할 것이다. 올드 보이, 영 보이로 딱지 붙이는 행태는 국정 성공에 도움이 안 된다. 올드 보이의 오랜 경력에 때가 좀 묻었다고 해서 ‘배드(bad) 보이’ 운운하는 ‘거룩한 잣대’도 촌스럽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동영상 제공=인수위, 편집=동아일보 사진부 이종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