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스웨덴에 출장을 갔을 때 30년 전 스웨덴으로 이민 간 한인숙 씨를 만났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스톡홀름 외곽의 고급 주택가로 2001년 이사한 직후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이 한 달 내내 돌아가면서 이사를 축하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환영해 주는 것은 반가웠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 이사 온 이웃을 방문하는 목적이 또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같이 어울릴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한 씨는 “유럽 선진국에서는 혈연보다 지역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웃들의 ‘새내기 테스트’를 흔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저출산고령화정책 연구본부장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이웃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현상은 선진국 대부분에서 나타났다”며 “이는 집값에도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이웃이 누구이고 동네 분위기가 어떤지가 집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 강남권은 어떨까.
서울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자원봉사 등 지역 주민행사에 가 보면 강남구 내에서도 아파트 단지에 따라 주민들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어떤 단지는 돈을 내세워 으스대는 부자가 많은 반면, 어떤 단지는 예의 바르고 겸손한 부자가 많은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렀고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 나타난 현상이나 전문가들의 진단이 맞는다면 한국에서도 이웃의 분위기가 집값에 더 많이 반영될 것 같다. 서울 강남권에서 졸부가 많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집값 차별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꼭 집값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웃이 중요한 이유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낯선 곳에 가서 집을 새로 구할 때는 해당 지역에 사는 친지나 중개업자 등을 통해 주민들의 성향이나 이웃 분위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웃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사 갈 시골 마을의 주민 성향도 모른 채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갔다간 1, 2년 내에 짐을 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