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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인생 훈수]원익선 씨가 원성진 9단에게

입력 | 2008-01-31 02:58:00

아마 6단인 원익선 씨(왼쪽)와 원성진 9단이 자택에서 2점 접바둑으로 부자 대국을 펼치고 있다. 아버지 원 씨는 “이기려면 3점은 놔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사진 제공 원익선 씨

원성진 9단


2007년은 어느 때보다 네게 뜻 깊은 한 해였던 것 같다.

네가 입단 이후 국내외 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타이틀 획득과는 인연이 없었지. 네가 지난해 송아지가 코를 뚫듯 BC카드배 신인왕전과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우승한 것은 그동안의 아쉬움을 한꺼번에 보상해 주는 듯하다.

형 성욱에게 바둑을 가르쳤더니 형을 좋아했던 네가 형과 바둑을 두기 위해 기를 쓰고 공부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너를 프로기사로 만들 마음은 아니었지만 6세 때 KBS바둑축제 유치부에서 준우승하고 이듬해 우승하면서 프로기사로 만들라는 주위의 권유를 많이 들었다. 너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형은 4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게 했다.

한집에 프로기사는 한 명이면 족할 것 같아 먼저 입단하는 아이만 프로기사를 시키려고 했다. 당시 실력이 앞섰던 형이 입단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네가 먼저 입단했지. 그것도 운명이었나 보다.

네가 프로 초년병 시절 소띠 해(1985년)에 태어난 유망주로 너와 박영훈 최철한 9단을 묶어 ‘송아지 3총사’라고 불렀지. 아쉽게도 셋 중에서 너의 스퍼트가 제일 늦었다. 박영훈 9단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최철한 9단이 이창호 9단을 꺾고 국수를 차지하는 등 화제를 불렀다.

너도 2003년 LG배(4강) 삼성화재배(16강) 농심신라면배(3연승) 등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타이틀’을 따지 못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지. 게다가 그해 천원전 결승에서 최 9단에게 1-3으로 패한 아픔이 꽤 컸던 것 같다. 너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하도 ‘송아지 3총사’를 들먹이니까 한동안 초조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승부사의 미덕은 빨리 잊는 것이다. 졌다는 건, 혹은 누구에게 뒤처졌다는 건 과거의 일일 뿐 미래의 성적과는 무관하다. 자꾸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할수록 미래가 더욱 어두워진다. 진 것을 잊을 뿐 아니라 이긴 것도 잊어야 한다. 이긴 기분에 도취돼 자만해지면 그 역시 암울할 뿐이다.

네가 자랑스러운 건 기복 없이 꾸준한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반짝 빛날 수 있는 기재는 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승부사는 한순간 빛나는 별똥별이 아니라 늘 빛나는 별이 돼야 한다. 네가 2005년 이후 랭킹 10위 안에 꾸준히 들고 있는 점이 아빠는 기쁘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한 게 바로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게을러지지 마라. 그 공부의 힘이 언제 표출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너는 우보천리(牛步千里), 대기만성(大器晩成)하는 스타일이라고 본다. 네가 세계대회 결승 진출로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한다면 2년여 뒤엔 군대에 입대해야 할 거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군대 다녀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늘 멀리 보고 높이 나는 네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