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재섭 대표 “합의 저버리고 뒤통수치는 행위”
한나라당 강재섭(사진) 대표가 30일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 나타나지 않았다. 2006년 7월 대표에 취임한 뒤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전날 공천심사위원회가 ‘부패 전력자’에 대해서는 공천 신청 자격을 주지 않기로 한 당규에 따르기로 결정한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공심위 결정대로 하면 ‘친박근혜’ 진영의 김무성 최고위원이 공천 신청을 할 수 없고 친박 진영의 강한 반발로 심각한 당내 분란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이날 측근에게 “정치는 당헌 당규도 있지만 신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건 합의를 저버리고 뒤통수를 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그는 전날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 한나라당은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강 대표가 또 다른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문제가 된 당규는 지난해 한나라당이 4·25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당 쇄신 차원에서 강 대표 자신이 직접 주도해 만들고 통과시킨 것이기 때문. 강 대표는 당규를 개정해서까지 특정 정치인을 살려 줄 경우 비판 여론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또 친박과 ‘친이명박’ 진영 사이에서 거중 조정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주저앉을 경우 대권 가도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그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 안강민 공심위장 “당규를 고쳐주든지… 난 할말 없다”
“당규를 바꾸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안강민(사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30일 이같이 밝히고 최고위원회에 부패 비리 전력자의 공천 신청을 금지한 당규의 개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안 위원장이 ‘공심위는 당규를 뛰어넘는 결정을 할 수 없다. 현 당규대로라면 부패 비리에 연루돼 벌금형 이상을 받은 사람은 사면 여부에 관계없이 공천 신청을 할 수 없다. 당규를 엄격히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공심위의 공식 결정이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공심위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한 강재섭 대표에 대해서도 “그러면 안 된다. 당규를 고쳐 주든지 해야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안 위원장은 “공천 신청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지 말고 공심위가 개별적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한 안상수 원내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31일 오후에 공심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
공심위 관계자는 “그렇다고 공심위가 당규를 무시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본보 기자가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생각을 밝혀 달라고 하자 “오늘은 내가 할 말이 없다.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김무성 최고위원 “처음부터 날 죽이려는 음모 있었다”
한나라당 김무성(사진) 최고위원은 30일 통화에서 “당을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해 온 나에게 공천 신청 자격조차 주지 않는 것은 준비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문답.
―당규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알선수재로 벌금형을 받은 것이) 이미 12년 전 일이다. 공직자 임용 기준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번 일은 당규 개정 때부터 나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다고 본다. 당초 사면 복권자를 예외로 하는 조항도 있었지만 의결 과정에서 빠졌다.”
―강재섭 대표, 이방호 사무총장과 사전에 이 문제를 협의했나.
“강 대표와 이 총장을 만나 ‘당규 개정이 안 되면 탈당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 ‘걱정하지 마라.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 총장이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제일 강경하게 당규 적용을 주장했다. 그래서 강 대표도 충격을 받은 것이다.”
―당규 개정이 안 되면 탈당하나.
“우리 쪽(박근혜 전 대표 측) 의원 35명이 ‘독자행동을 하지 말라’고 해 지켜보고 있다. 이 문제는 당규 개정 없이는 풀 수 없다. 사무총장 시절 당이 적자에 허덕일 때 판공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했다. 또 책임당원제를 시행해 당을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나에게 공천 신청 자격조차 주지 않을 수 있나.”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 이방호 사무총장 “불만 이해하지만 당규 따를 수밖에”
한나라당 이방호(사진) 사무총장은 30일 부패 연루자의 공천 신청 불허 규정에 대해 “공천심사위원회는 당헌 당규에 따라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날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알선수재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던 ‘친박근혜’ 성향 김무성 의원에 대한 공천 신청 불가 논란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부패 전력자 공천 결정은 당규대로 하나.
“공심위는 현재 당헌 당규에 있는 대로 원칙에 따라 심사할 수밖에 없다. 당헌 당규를 고치는 것은 공심위의 권한이 아니다.”
―김 의원은 공천 신청이 안 되는 건가.
“된다, 안 된다를 말하는 건 실례고 내 권한도 아니다. 그 상황을 정치적으로 풀어 보려는 노력을 할 생각도 있다. 그러나 당규를 벗어나는 그런 정치적 해법에 공심위원들이 합의해 줘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공심위원들이 당규대로 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강재섭 대표가 공심위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친박 의원만 탈락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특정 계파를 죽이고 살리고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뒷감당을 하겠나.”
―당규를 개정할 생각은 없나.
“여론이 가만히 있겠나. 벌써 오만해졌다고 하지 않겠나?”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경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