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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위장간첩’ 이수근 검거

입력 | 2008-01-31 02:58:00


탈출에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탕’ ‘탕’…. 따갑게 귓전을 울리는 총소리를 뒤로 한 채 그가 탄 차는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하나의 감옥을 탈출한 그는 더 무서운 감옥에 갇혔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얘기가 아니다.

1967년 3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 군사정전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유엔군 영국대표 밴크로프트 준장의 차에 올라탄 그는 경비병의 총격을 뒤로 하고 15초 만에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다.

북한 언론계의 거물급 인사였던 그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000만 원이 넘는 정착금과 고급 주택이 주어졌고 가는 곳마다 엄청난 환대와 찬사를 받았다. 인기 여가수와의 염문도 불거졌고 대학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중앙정보부의 판단관으로 채용될 때만 해도 그의 앞길은 활짝 열린 듯했다.

그는 자유를 찾아 월남했지만 완전한 자유의 몸은 아니었다. 감시는 계속됐고,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행사에 동원돼 ‘자유대한 만세’를 외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 속에서 회의를 느끼는 듯했다.

강연회나 기자회견에서 김일성에 대한 비판을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는 중정의 의심을 샀다.

1969년 1월 27일 그는 또 한 번의 탈출을 감행한다. 가발과 콧수염을 붙이고 위조여권을 소지한 채 처조카인 배경옥 씨와 김포공항을 빠져 나간 그는 홍콩을 경유해 베트남 호찌민 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