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필로그래피를 보면 멜로나 액션으로 채워졌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1993년 데뷔 때부터 지금껏 따라다녔다. 2003년 ‘오! 브라더스’에서 이범수와 함께 코믹 연기로 장르를 넓히기도 했지만 ‘태풍’, ‘에어시티’ 등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점에서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은 눈에 띈다.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들의 충돌을 그린 실화를 그린 작품에서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깊이 있는 연기에 도전했지만 관객의 기억에는 크게 남지 못했다.
●이정재 “도회적 이미지 때문에 부담됐죠”
최근 촬영중인 ‘1724 기방난동사건’은 이정재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다. 사극에 재도전하고 흥행도 거머쥐겠다는 다부진 포부가 깔려있다.
30일 경기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막바지 촬영 중에 있는 이정재는 전작인 ‘태풍’과 ‘에어시티’에서 억누르는 연기와 달리 “에너지를 분출해서 배우로서 재미있고 더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사극이란 장르 자체가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다들 이정재하면 도시적이라고 해서 저 자신도 그런 듯하게 생각을 해왔죠. 시나리오가 워낙 재미있고 여균동 감독님과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많았어요. 감독님, 배우들과 리허설을 한 달 가까이 하면서 현장에서 덜 어색하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조선 최고 주먹이 되는 과정을 담아 액션 분량도 상당하다. 그는 “컴퓨터그래픽도 많이 쓰였는데 결과물이 무척 궁금하다”며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여균동 “정재야 난 더 부담스럽다”
사극이 부담스럽기는 메가폰을 잡은 여균동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는 “요즘 시대극이 유행해서 조폭 이야기를 200~300년 전으로 돌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제가 역사에 문외한이지만 지금 40, 50대는 왕조사, 당쟁사 위주(역사를 배웠다)였다”면서 “최근 들어 사극 열풍 속에 발견한 것은 생활사적인 접근이었다. 만약 그들을 (스크린으로) 빼낸다면 재미있지 않을까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의 ‘비주류’를 다루면서 한국 영화의 코드 중 하나인 ‘조폭’을 끌어들여 부담감을 덜었다는 뜻이다. 흥행성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고 액션과 코믹을 가미해 다분히 상업적인 요소도 갖췄다.
앞서 여 감독은 “제작 환경의 변화가 10여 년 전부터 이뤄졌는데 적응이 안됐다. 관심영역이 개인적이고 내면적으로 간다. 기껏 시나리오를 써도 내가 제작사라면 안 찍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아직 허영심이 남아 이 작품을 택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정재와 여균동 감독은 공교롭게 ‘이재수의 난’을 통해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여 감독은 영화에 깜짝 출연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해 배우로서 ‘두번째 호흡’이 관심을 모은다.
여 감독은 그동안 정치적인 메시지나 풍자, 불만 제기로 ‘이단아’로 불려왔다. 세월이 흘러 50대에 접어들면서 세상과 타협한 것일까.
“전엔 인물이나 상황을 통해 정치나 금기시된 것을 풍자하고 뭔가 폭파시키고 싶은 게 강했는데 이번엔 인물이든 상황에 숨은 유머와 해학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전에는 그걸 통해 다른 것을 공격하려고 한 반면 이번엔 그 자체를 즐기고자 했습니다.”
‘1724 기방난동사건’은 1724년 영조 즉위 직전 조선 주먹들이 기방(기생집)을 두고 벌어진 사건을 다룬 코믹액션사극으로 이정재가 건달 천둥 역을 맡았으며 김옥빈은 평양기생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기생으로 변신한다. 이밖에 김석훈, 이원종 등이 출연한다. 5월말 개봉 예정.
남양주=스포츠동아 정기철 기자 tomjung@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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