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촉진하기 위해 운영 중인 보조금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보조금은 조세지원과 함께 기업 R&D를 늘리기 위한 정부의 가장 중요한 ‘당근’ 가운데 하나여서 이번 분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서울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에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송종국 STEPI 연구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R&D를 크게 늘리는 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STEPI가 지난 2002~2005년까지 매년 발간한 ‘과학기술 연구활동 조사보고’에서 R&D 활동에 대한 설문에 한 번이라도 응했던 중소기업 9079개, 대기업 731개를 대상으로 했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은 정부 보조금이 1% 증가할 때 R&D 투자를 0.03% 늘렸다. 이에 비해 같은 비율로 매출과 조세지원이 증가했을 때에는 각각 1.2%와 0.99% R&D 투자를 확대했다. 보조금 제도가 대기업 R&D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던 것이다.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나빴다. 보조금이 1% 늘었을 때 되레 투자가 0.0079%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송 연구원은 “정부 지원이 기업의 투자를 오히려 줄이는 ‘구축효과’가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중소기업이 이왕 지출하던 연구개발비를 보조금으로 대신 충당하기 때문. 보조금이 오히려 연구개발 역량을 훼손한 것이다.
송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기업 R&D 촉진에 기여하지 못한 현행 보조금 제도의 효과에 의문이 생긴다”며 “보조금 지원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이 하지 않는 원천기술과 기초연구, 국방 · 에너지 등 공공기술 분야에 보조금을 집중해야 한다”며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기술정보 제공 등 R&D 서비스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고상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정보통신산업연구실장은 “보조금을 받았을 때 적극적으로 R&D에 나설 수 있는 기업을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보조금을 원천기술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는 일단 신중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도 “보조금을 받은 중소기업이 단기적으로는 R&D 투자를 줄일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늘린 사례도 관찰된다”며 “보조금의 영향을 좀 더 오랜 기간을 두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STEPI,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