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그토록 울부짖는 것은 거대한 바보들의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리어왕’ 중에서
-지휘자 금난새 씨 추천》
예술사의 발전이 과거에 대한 학습과 천재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면 영문학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라는 천재에 의해 그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는 데 절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미국의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최근 국내에도 번역된 저서 ‘세계문학의 천재들(원제 Genius: A Mosaic of 100 Exemplary Creative Minds)’에서 셰익스피어를 100명의 문학 천재 중 첫머리에 놓았다. 실제로 살아 숨쉬는 남녀보다 더 진짜 같은 캐릭터의 창조, 작품에서 12단어당 1개꼴로 새롭게 만들어 낸 단어들(이 중 상당수가 지금도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희극과 비극에서 동등하게 과시한 탁월함 등 블룸이 꼽은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21세기 독자의 눈으로 봐도 놀랍다.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5대 희극’은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네 편의 비극과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한여름 밤의 꿈’ ‘십이야’ 다섯 편의 희극을 수록한 책이다. 모두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연구회가 번역을 맡은 이 책은 딱딱한 문어체 대신 편안한 입말에 가깝게 옮긴 게 특징이다.
블룸을 비롯한 평론가들이 꼽은 대로 시적인 리드미컬한 대사 속에 구현된 인물들의 개성적인 성품을 확인하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저놈은 제 어미젖을 빨기 전에 젖가슴에 인사부터 했을 놈이야. 세상에는 세태의 파도타기를 하면서 뻔지르르한 사교술과 거품 같은 미사여구로 타인을 기만하며 살아가는 놈들이 수두룩하지”라는 햄릿의 대사에서, 비판의식으로 가득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고뇌하는 지식인 햄릿의 모습이 단숨에 비친다. “여자의 잔머리를 가볍게 보지 마세요. 잔머리의 문을 닫으면 창문으로 튀어나오고, 창문을 닫으면 열쇠구멍으로 튀어나오죠”라는 로잘린드(‘뜻대로 하세요’)의 대사에는 사랑하는 사내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총명한 여성의 모습이 서려 있다.
의심으로 인해 변질되는 인간성(‘오셀로’), 권력을 향한 욕망(‘맥베스’) 등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뿐 아니라 사랑의 비이성적 속성에 대한 상징적 묘사(‘한여름 밤의 꿈’),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베니스의 상인’) 같은 깊은 주제의식뿐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의심 때문에 의심한답니다”(‘오셀로’), “죽음이란 나이 순으로 찾아오는 게 아니지요”(‘말괄량이 길들이기’) 같은 감각적인 대사들은 현대 독자들이 읽어도 새롭다. 과연 천재의 작품으로 불릴 만하다.
이 책을 추천한 지휘자 금난새 씨는 “셰익스피어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인간의 갈등을 잘 묘사한 작가가 없다”면서 “대통령이라면 인간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책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