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에 사는 10억 원 이상 자산가 10명 중 4명은 자산 평가액이 높지만 생활은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으로, 유동자산이 부족해 마음 놓고 소비할 여유가 없고 여전히 돈을 쓰기보다는 모으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본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서울 강남, 서초, 송파 3개 구와 경기 성남 분당구 주민 563가구를 대상으로 자산 구조와 부자로서의 의식 등을 설문조사한 결과 확인됐다.
설문지는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바꾸면 20년 간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부동산 등 자산이 있지만 돈이 묶여서 생활비, 자녀 학비 등을 걱정한 적이 있는가 △전혀 모르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돈을 쓸 의향이 있는가 등 10개의 질문으로 구성됐다.
조사 결과 10억 이상의 자산을 가진 가구 중 상당수가 경제적 자유를 얻은 진정한 의미의 부자가 아니고 오히려 평범한 샐러리맨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 자산이 10억 이상인 응답자들의 73.6%가 소득이 늘어서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의 상승 때문에 부자가 됐다고 대답했다.
또 이들의 68.1%는 1주택을 갖고 있다고 대답해 부동산 투기 등의 방법으로 적극적인 재산 증식을 위해 노력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67.2%였으며 이들은 돈을 쓰기 보다는 모으는데 기쁨을 느끼는 검소한 소비성향을 지닌 데다 지금도 '돈을 쓰기 보다는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투자성향 역시 76%가 높은 위험을 안고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공격적인 투자 보다는 예금이나 적금 같은 자산 증식 속도가 느리지만 안전한 투자를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부동산 위주의 자산을 처분해 당장 쓸 돈을 마련하고 싶어도 세금 때문에 선뜻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들은 종합부동산세 마련(53.9%), 노후 자금 및 생활비 마련(65.7%) 등을 위해 부동산을 처분하고 싶어 하지만 79%가 양도소득세 등 과도한 거래세 때문에 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주량 연구위원은 "이른바 이들 '가난한 부자'의 증가는 건전한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들의 노후 설계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 계층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사회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