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 제가 살았던 산골 마을에 수십 명의 인부들이 몰려와 전신주를 높다랗게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초라하고 궁색했던 우리 집 안방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에 전깃불이 켜진 것은 제가 열네 살 되던 1953년이었습니다. 1887년 경복궁 후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불이 밝혀진 지 무려 66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간 뒤의 일이었습니다.
집에 전기가 들어왔었던 그 감격적인 날, 저는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신기해서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방문을 활짝 열면, 멀리 떨어진 이웃집 툇마루 아래 엎드려 잠들었던 삽살개가 성난 파도처럼 달려오는 위협적인 불빛에 기겁해서 컹컹 짖어대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달걀만 한 전구에 켜진 그 근엄한 불빛은, 온 지구촌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부정과 모함, 그리고 모든 어두운 것들을 낱낱이 색출해 낼 것처럼 위협적으로 밝았습니다. 우리들 얼굴에 붙은 작은 코딱지도 숨길 수 없게 되었다는 노출의 모멸감과 두려움을 안기었고, 가슴속에 숨겨둔 죄의식도 들통이 날까 해서 스스로 주눅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 계산으로만 해석이 가능한 문명의 이기가 아니었습니다. 가슴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을 줄 알았던 모든 추잡스러운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현자의 눈과 같은 섬뜩한 투시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전깃줄은 지구촌 여기저기를 포박하듯 휘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철길처럼 곧게 뻗어나가는가 하면, 혹은 실타래처럼 엉키었다 풀어지고 흩어지면서 지구촌 어디 안 가는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지상과 지하를 막론하고 철판을 뚫고 유리벽을 뚫어 어디든 자유자재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상의 공간과 지하 세계를 한꺼번에 지배하고 있는 열대 우림의 이미지와 부합됩니다. 그러나 이런 전봇대가 지금은 도시 변두리의 이면도로와 철거를 앞둔 서민 아파트나 달동네 골목길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개발의 상징처럼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 전봇대는 까치들이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살아도 감전사를 당하지 않아 또한 신기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도시 미관을 해치거나, 사람과 차량의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제거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나 높다란 곳에 있어서 아이들에게는 뒷덜미가 아플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볼 수 있었던 전봇대에, 하늘다람쥐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작업을 하던 전기수리공의 곡예도 볼 수 없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