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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권순택]실패한 교육개혁의 교훈

입력 | 2008-02-03 20:20:00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이 너무 요란하고 균형을 잃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어떤 정책은 시장에 미칠 작용 반작용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지 않고 불쑥 던져 놓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에 관한 인수위 활동은 인수위가 너무 ‘오버’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국민의 기대가 가장 큰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대한 인수위발 소식은 ‘대불공단 전봇대 뽑기’와 금산분리 원칙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정도였다. 신용불량자 구제 방침과 휴대전화 요금 인하는 뜬금없이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진 경우다. 부동산 관련 세금 정책은 시장에 미칠 여파 때문에 신중한 자세로 돌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에 비해 영어 공교육 정책은 인수위가 공청회까지 열어 연도별 영어 전용 교사 확보 계획까지 내놓았으니 진도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러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지, 영어 공교육 강화 특별위원회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인수위 활동의 핵심은 정부의 조직 기능 예산을 파악해 새 정부 국정과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통령직인수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에서는 인수위 활동이 대체로 비공개로 이뤄진다.

인수팀은 행정부에 파견돼 ‘정보 수집가들처럼 조용히’ 활동한다. 인수위는 정부 업무를 ‘파악’하고 국정과제를 수립하는 조직이지, 정책을 집행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수위 활동 기간에 미국 언론에 ‘인수위가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는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인수위가 요란스럽게 추진하는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은 개혁을 명분으로 시작했다가 실패한 교육정책들을 돌아보게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주도한 대입 전형 개혁과 교원 정년 단축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나만 잘해도 대학 간다’던 ‘이해찬표’ 교육개혁은 심각한 학력 저하로 ‘이해찬 세대’라는 말까지 낳았다. ‘4, 5년 내에 사교육비를 모두 없애겠다’고 했지만 1998년 5조6000억 원이었던 사교육비는 지난해 30조 원으로 늘었다. 영어 사교육비만 15조 원이다.

‘시대적 요구’ ‘나이든 교사 1명 퇴직하면 젊은 교사 2.5명 쓸 수 있다’며 밀어붙인 교원 정년 단축은 1999년 3만 명의 교원 퇴직으로 교원 부족 사태를 맞았다. 결국 정년퇴직했거나 명예퇴직한 교사들을 기간제 교사로 불러들이고 중등교원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과 전담 교사로 임용해야 했다. 교원자격 체계에 대혼란이 빚어지고 교육 현장의 갈등도 심각했다.

이런 사례는 정책 목표가 옳더라도 정부가 교사들의 동의와 자발적 참여 없이 정책을 밀어붙일 때 예상되는 위험을 잘 보여 준다. 특히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 로드맵은 5년 동안 4조 원이 필요하지만 예산 확보 방안도 없다. 2007년 교육부 예산 31조 원 가운데 교원 인건비만 27조 원이니 별도 예산이 불가피하다.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후 교육부가 예산 확보 방안과 정책 우선순위 등을 고려해 손질이 불가피한 세부 계획까지 미리 마련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언론을 통해 비치는 모습이 인수위 활동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수위가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할 새 정부 국정과제들을 비공개로 착실히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