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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수교 중매’ 대북협상 카드로

입력 | 2008-02-03 20:23:00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일 동아일보 등 '한미일 대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한미, 한일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는 것이 지상(至上) 목표라는 게 이 당선인의 현실 인식이다. 한국이 미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라고 부탁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 사고의 결과다.

▽"미국 일본과 친해야 북한 돕는다"=이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20일 당선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특히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가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서로 발전하면 북미관계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왜 한미, 한일관계의 발전이 남북, 북미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지금까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0년 전 보수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한미일 공조를 통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1일 이 당선인의 발언은 정반대다. 그는 "우리가 미국과 사이가 나쁘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와 미국의 관계가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에 근거한 실용주의=이날 발언은 이 당선인의 두 가지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하나는 북한의 운명을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

한 측근은 "미국 정치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당선인은 미국이 국제 정치와 경제를 자신의 국가이익에 따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의 동의 없이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론은 16세기 이후의 세계는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체계이며 현재는 미국이라는 중심부 국가가 주변부 및 반(半) 주변부 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삶의 조건을 규정한다고 보는 정치경제 이론이다.

이 당선인은 또한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고는 안보 불안 해소와 경제난 극복을 할 수 없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 지난달 이 당선인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수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측근은 "이런 상황에서 친미(親美)를 해야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용미·用美) 궁극적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북한 문제가 사라져야 남한 경제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의 소산"이라고 설명했다.

▽북한도 실용주의에 기대=실제로 북한은 1990년대 이후 남한 및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두 차례의 핵 갈등을 일으켜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고 수교를 향한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시도해 왔다.

북한은 2002년 9월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100억 원 대의 대일 청구권 자금을 얻으려 했으나 다음달 미국이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하자 미국을 통하지 않고는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노무현 대통령도 사실상 이 당선인과 같은 목적을 추구했지만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하는 등 방법이 전략적이지 못했다"며 "북한 관계자들이 '노 대통령 때문에 미국과 될 일도 안 된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당선인의 대북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방미한 이봉조 통일연구원장은 1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해 말 북한을 방문한 한 인사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새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해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921062|이지훈기자 j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