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나 특허, 국제거래 등 모든 분야에 해박한 법률가는 없다. 오늘날 전문화 시대에 판검사 경력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법률문제가 수없이 많다. 법정소송 위주로 일해 온 판검사 경력자나 변호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 전문화된 법률지식이 필요한 사회 각 분야에 ‘양질(良質)의 값싼 법률서비스’를 제공케 하자는 것이 로스쿨 제도 도입의 취지다. 그러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각 대학의 자존심 싸움으로 지금 ‘로스쿨 대란’을 겪고 있다.
▷로스쿨 총정원 2000명은 변호사의 급증을 원하지 않는 법조계와 대폭 증가를 요구하는 대학의 줄다리기를 국회와 교육부가 조정한 산물이다. 지난달 31일 예비인가 대학과 정원은 25개 대학에 40∼150명씩으로 1차 발표됐다. 그러자 명단에 끼지 못했거나 정원에 불만을 품은 대학들이 벌 떼같이 일어섰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선 총장들이 직접 확성기로 구호를 선창하는가 하면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상대 측은 교내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교수직 사퇴’로 맞설 것임을 다짐했다. 조선대 총동문회는 광주 도심에서 ‘시민궐기대회’를 열고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단국대 등은 신문광고를 내 ‘소송불사’를 외쳤다. 동국대는 ‘종교(불교)에 대한 편향’ 의혹을 제기했다. 로스쿨 유치에 다걸기(올인) 해 온 전국 40여 개 대학의 대다수가 불만이다. 그동안 교수진 및 시설 확보에 쏟아 부은 막대한 돈 때문에 각 대학은 당장은 물론 앞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교육부는 특정 대학을 추가하라는 청와대 압력에 ‘항명’하는 기상천외한 일도 벌어졌다. 여기에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윤승용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원광대의 로스쿨 유치에 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해 불공정 심사 의혹까지 보탰다. 로스쿨 최종안이 예정대로 오늘 발표될지 미지수다. 로스쿨 대란은 이제 대학들의 줄소송 사태로 제2라운드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차기 정부도 로스쿨 파고(波高)를 피해 가긴 어려울 것 같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