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미화.’ 이 단어는 초등학교 시절 그림 좀 그린다고 늘 교실 미화를 맡았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운 그림 액자, 예쁜 삽화를 곁들인 시, 색색의 풍선과 색띠…. 아이들을 좀 더 따뜻하고 밝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환경 미화에 꼭 필요한 것이 물감이었다. 색색의 물감이 없었더라면? 흰 종이에 검은 글과 검은 사진, 벽은 그냥 흰색, 문과 알림판은 나무색. 색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다!
물감은 안료나 염료 같은 색을 나타내는 화학 물질로 만든다. 옛날 영국에 윌리엄 퍼킨(1838∼1907)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건축가였던 아버지처럼 그도 건축가나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13세 때 한 친구가 아름다운 결정을 만드는 간단한 화학 실험을 보여 주자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 할 일이라 여기고 2년 뒤 영국왕립화학학교(후에 임피리얼 칼리지에 편입됨)에 들어간다.
그는 A W 호프만 교수의 조수로 말라리아 특효약 키니네를 연구하던 중 우연히 바닥에 가라앉은 검은 침전물에 주목했다. 여기서 최초의 보라색 염료 ‘모브’가 탄생했다. 18세의 퍼킨은 이 보라색 염료로 비단을 염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富)’를 꿈꾼 그는 호프만 교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 염료공장을 세웠다. 예상대로 새 염료는 큰 성공을 거뒀고 보라색 옷이 유행했다.
정보기술(IT) 세상인 지금은 그림이나 디자인을 물감 없이, 컴퓨터 모니터와 액정표시장치(LCD)로 감상하니 물감이, 또 화학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LCD(Liquid Crystal Display)는 ‘액정(Liquid crystal)’이라는 화학물질로 만든다. 구조가 독특한 이 물질은 전기가 통했을 때 분자 배열이 바뀌는 특성이 있다. 이를 응용해 색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니 색채는 화학 없이는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화학은 여인을 아름답게도 한다. 화학 없는 세상에서 여인들은 기미 잡티가 잔득 낀 ‘생얼’로 다녀야 하고, 마스카라 안한 눈에 앵두 같지 않은 입술, 비듬 떨어지는 부스스한 머리로 소개팅에 나가야 한다. 선크림이 없다면 야외 스포츠를 즐기기가 꺼려질 것이니 자외선을 많이 받는 스키나 윈드서핑 같은 멋진 스포츠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이렇듯 모든 화장품은 화학의 산물이다.
또한 수분·영양크림에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다면 박테리아의 온상이 되고 말 것이다. 화장품 대부분은 소량의 기름과 다량의 물을 혼합한 것이니 박테리아가 얼마나 좋아할까. 방부제라면 많은 사람이 소스라치지만 사실 방부제가 안 들어간 제품은 거의 없다. 종류와 함량에만 주의하면 실은 꼭 필요한 것이다.
유행에 민감한 여인들의 매니큐어는 평범하지 않다. 각도를 달리 보면 다양한 색의 세련된 금속성 광택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진주가루를 뿌린 듯한 ‘펄’이나 ‘형광’은 더 유혹적이다. 이런 효과는 나노 크기의, 알루미늄 같은 금속산화물 가루를 첨가해 얻는다.
세계의 명화는 화학이 그렸다. 여인의 아름다움은 화학의 도움이 크며, 초등학교 환경 미화도 화학이 해줬다. 쓰레기를 ‘꽃(花)’으로 ‘변화(化)’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화학이다. 지구환경을 화학이 오염시켰다고들 하지만 사람들의 필요로 인해 너무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오염을 변화시켜 아름다운 지구로 복구하는 기술과 학문 역시 화학이다.
‘화학이 지구를 더 푸르게.’ 이 문구는 대한화학회의 구호다. 나는 ‘화학이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전창림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