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틀 여가, 레저-취미생활도 좋지만…
직장인 “자기계발에 써야죠” 1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몇 년 전 어느 신용카드 광고에 등장했던 문구다. 이 문구는 현대 도시인의 욕망을 간명하게 담아 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여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젊은 직장인일수록 돈보다 시간적 여유를 원한다. 이런 추세에 맞게 여가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의 출범은 그러한 사회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 시간이 지속적으로 단축되고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여가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개인적 사회적 산업적 정책적 차원에서 급속하게 높아질 것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나는 변화를 가리켜 ‘여가화’라는 말도 한다. 이것은 산업화와 도시화, 세계화, 정보화에 못지않게 우리 삶에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어떤 학자는 ‘여가 쇼크’라는 말까지 만들어 냈다.
그런데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 무조건 좋기만 한 걸까?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과 돈이 주어져도 잘 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연휴를 손꼽아 기다려도 막상 그때가 되면 빈둥빈둥 놀며 무료하게 시간을 허비할 때가 많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인류가 당면하는 중대한 문제로 ‘권태’를 꼽는다. 이런 상황에서 주5일제 시행은 한편으로 심각한 도전이다.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우리 생활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아래 표를 보자. 이 통계는 주5일제가 시행되기 이전의 여가 생활과, 시행 후 자신이 원하는 여가 생활을 대비시켜 보여 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5일제 시행 이전의 여가 생활과 주5일제 실시 이후 사람들이 원하는 여가 생활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우선 ‘집에서 휴식’이라는 항목을 보자. 직장인들은 대개 주말이면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 혹은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그런데 휴일이 하루 더 주어지자 그러한 방식의 여가 생활을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에 여가 시간이 넉넉해지자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멍하니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시간을 허비하기가 아까워진 것이다.
다음으로 ‘친교 활동’이라는 항목을 보자. 친교 활동에는 새로운 사람과의 의미 있는 만남도 포함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친구들을 만나서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 주를 이룬다. 2002년 한 설문조사에서 사무직 직장인 3600명과 영업직 1740명을 대상으로 퇴근 이후 술을 마시는 데 소비하는 시간을 물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4명 가운데 1명은 일주일에 10시간 정도를 ‘술자리에서 보내며’, 특히 영업직의 경우 10명 가운데 4명이 주 10시간 정도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인의 술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위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술자리도 주5일제 시대에는 조금씩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새롭게 각광을 받는 것이 레저나 취미 쪽의 여가생활이다. 이런 여가생활은 개인적으로도 추구할 수 있지만,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구태의연한 연고에 얽매이지 않고 구체적인 관심이나 취향을 중심으로 한 사교활동에 적극적이다. 일부 직장에서는 집단적인 폭음으로 이어지는 회식을 마다하고, 문화 행사를 관람하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것으로 조직문화를 바꿔 가고 있다.
이 통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자기 계발’이라는 항목이다. 실제로 주5일제를 도입한 회사의 직장인들은 자격증 취득이나 외국어 공부에 여가 시간을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공부해야 살아남습니다.’ 인터넷으로 성인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어느 회사의 광고 문구다. 예전처럼 일자리가 평생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재교육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의 업무나 시험에 필요한 지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풍부하게 가꾸기 위한 공부에도 힘써야 한다. 배움의 즐거움으로 삶을 채워 가는 평생학습 시대가 열리고 있다. 책 한 권으로 주말의 여가를 황홀하게 보내는 당신은 참으로 멋지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