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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희생과 헌신의 ‘진달래꽃’?

입력 | 2008-02-04 02:54:00


어느 날 불쑥 날 버리는 임에게… 한아름 꽃을?

체념 가장한 숨은 진실 있지 않을까

○ 보편적 인식

한국 현대시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 있다. 모 여가수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노래로 인하여 학생들이 시의 전문(全文)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친숙한 작품이고, 누구든 “나도 그 시는 알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다 안다는 생각이 새로운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닐지….

우선 실제 작품을 보자.

(가)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임에게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의 모습이 분명히 그려진다. 그래서 참고서들에 제시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아주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 이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변해서 임이 떠나갈 때 대부분의 사람은 임에게 매달리거나 떠나는 임을 원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버림받는 이별의 현장에서 체념과 인내, 자기희생의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이별의 상황을 순종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오히려 임의 앞날을 축복하는 의미로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리겠다고 말한다. 전통적 휴머니즘과 애이불비(哀而不悲) 정서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는 전통 시가인 ‘도솔가’ 등에 나타나는 ‘산화공덕(散花功德)’과 상통한다.

○ 그것뿐일까?

분명 시 속의 상황은 떠나는 임을 보내며 애써 울음을 참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해석은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상황을 자세히 살핀 후 그 상황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자. 그러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진달래꽃’에서 화자의 감정은 각 연의 마지막 행에 의하여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화자는 연인에게서 버림을 받지만 슬픔에 앞서 ①연인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고(1연), ②(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려 드리며(2연), ③떠나는 연인에게 짓밟힘을 마다하지 않고(3연·이 경우 땅에 뿌려진 진달래꽃은 화자와 동일시된다), 마침내 ④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기로 결심(4연)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련의 행동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이처럼 맹목적인 순종이나 관용의 미덕만을 보여 준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자의 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어떤 내적 진실이 은폐되어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은폐된 진실, 은폐의 목적이 ‘진달래꽃’의 본질을 해명함에 있어 풀어야 할 숙제이다.

○ 다른 생각을 해보자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것도 “너 보기가 역겨워졌다”고 말하면서. 당신은 아직 그를 사랑하기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꽃을 뿌리면서 자신을 버리고 가는 이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까? 이건 좀 이상하다. 따라서 화자는 이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얘가 나에게 역겹다고 말하네? 그냥 ‘싫어졌다’도 아니고 ‘역겹다’고? 이 말이 나올 정도라면 나에 대한 사랑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거잖아. 어떻게 하지? 나는 아직 그가 좋은데.

①매달려 볼까? 아니야, 그러면 얘는 나를 더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할 거야.

②확 저주를 퍼부어 버릴까? 그것도 별로네.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속이 좁은 인간으로 비친다면 더 비참하지.

③그렇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최후의 심리전을 펴 보자. 얘도 조금은 내 반응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몰라. 이때 꽃을 뿌려주면서 축복을 빌어주는 척해 보는 거야. 어쩌면 의외의 반응이 얘의 마음을 돌려놓을지도 몰라. ‘쿨(cool)’하게 보일 수도 있어.”

인간의 심리는 때로 묘하게 반응한다. 하라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없었는가? 모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것을 보고는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 쟁반에 과일과 주스를 들고 들어오셔서 “아이고, 공부하는구나. 착하다. 계속 열심히 하렴” 하고 등을 두드려 주시고는 나가신다. 왠지 그때부터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그렇다면 ③을 선택하는 것이다. ‘역겹다’는 말이 나온 걸 보면 그의 마음은 완전히 화자를 떠났다. 화자는 심리적 역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도박으로…. 어떠한가? 오히려 현실적 해석이 아닐까?

○ 또 다른 생각은?

‘저주’ ‘악담’을 퍼붓는 모습은 아닐지….

“네가 날 버리고 간다고? 그것도 역겹다고 말하면서. 그래 나도 너에게 말해 주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지금은 물론이고, 죽어도(날 버리고 가는 당신이 사망해도) 나는 울지 않을 것이다.’”

이를 앙다물고 애써 눈물을 참으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눈에는 증오의 불꽃이 튀고, 두 주먹은 피가 나도록 움켜쥐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무사히 잘 가시라 말한다. 섬뜩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만 같다.

☞ ‘진달래꽃’에 대한 또 다른 견해들을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근의 청솔학원 언어논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