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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소비의 윗목 아랫목 함께 덥혀야

입력 | 2008-02-04 22:57:00


서울 봉천동 재래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편 할머니가 그제 이곳에 들른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붙들고 “장사가 안 된다”며 눈물지었다. 밑바닥 경기(景氣)가 날씨만큼이나 차갑다. 일자리가 불안하고 물가가 오르니 설을 맞는 주부도 좀체 지갑을 열지 않는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3분기까지 9.2였던 생활경제고통지수(체감실업률+물가상승률)가 10월 9.9, 11월 10.8, 12월 12.0으로 급상승했다. 이러다가 신용카드 사태로 급격한 내수 불황을 겪었던 2004년 평균인 11.6에 육박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냈다.

2000년대 들어 3%대인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늙은’ 경제에서나 있을 법한 낮은 수치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데 투자만 재촉하기도 어렵다. 소비 없는 투자는 공급 과잉과 기업 부실을 낳는다. 소비 위축이 투자 위축을 부른다.

특히 민간의 소비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국내 총지출 중 민간소비 비중이 50%대 전반으로 미국(70%)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7%)에 크게 못 미친다. 쓰고 싶어도 쓸 기분이 나지 않고 실제로 쓸 돈도 별로 없다. 무거워진 세금에다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각종 준조세, 대출이자 등도 늘어나 중산층조차 긴축에 긴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유계층은 고(高)물가, 규제 그리고 질시의 눈총을 피해 외국에 나가 돈을 쓴다. 지난해 해외여행과 교육에서 주로 생긴 서비스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인 200억 달러에 이른다.

해외 소비를 자제하라며 애국심만 들먹일 시대도 아니다. 서울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외국인들도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세금과 규제를 줄이면 고급 서비스 요금을 적지 않게 낮출 수 있다. 단기 어학연수생이 연간 2조 원, 해외 골프여행객이 1조 원을 쓴다. 이들만이라도 국내에 머물러 내국인의 해외 지출과 외국인의 국내 소비에 균형이 이뤄지면 최소 25만70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분석한다.

전자제품 골프장 호텔에 매기는 특소세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금으로 부자 괴롭히기’는 돈의 흐름을 크게 보지 못하고, 서민의 원초적 기분에만 영합하는 정책이다. 여유계층이 국내에서 돈을 써야 그 돈이 흘러서 좌판 할머니에게까지 갈 수 있다. 재정, 금융정책 말고도 아랫목에서 윗목까지 소비를 덥힐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