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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단 둘뿐인 ‘조선족 창구 은행원’의 코리안 드림

입력 | 2008-02-05 03:00:00


중국 동포들의 국내 진출이 늘면서 국내 시중은행 창구에서도 조선족 직원 2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서울 중구 기업은행 서소문 지점의 방각(27·여) 씨와 구로구 외환은행 대림역 지점의 김미홍(26·여) 씨가 그 주인공.

○ 120 대 1 경쟁 뚫고 당당히 입사

중국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태어난 방 씨는 토익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 대학 졸업 후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유학을 가더라도 6개월가량 한국어를 배운 뒤 가라”고 권해 4년 전 한국으로 왔다. 건국대에서 1년가량 어학코스를 밟은 후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에서 직장을 잡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120 대 1의 경쟁을 뚫고 중견행원으로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한국어는 약간 서툴지만 중국어와 영어 실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무난히 합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서소문 지점에서 일한 방 씨는 “중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은행원이 있다는 소문이 나 인근 영어학원의 외국인 강사들이나 중국인 유학생들이 우리 지점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방 씨는 “막상 한국에 오니 피 속에 흐르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잘 설명할 순 없지만 민족성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투가 약간 달라 겪은 가슴 아픈 경험도 털어놨다.

신용카드 가입 서류에 나온 정보를 확인하려고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사기 치려고 전화한 것 아니냐” “은행 직원이 맞느냐”며 지점장을 바꾸라고 했다는 것. 그 고객이 결국 별 이유 없이 카드를 해약한 것을 알고 방 씨는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방 씨는 “앞으로 교포들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동포 고생하는 모습 마음 아파”

지난해 12월부터 외환은행 대림역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미홍 씨는 구로구 구로동이나 가리봉동의 교포 및 중국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헤이룽장(黑龍江) 성 출신으로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에서 대학을 졸업한 김 씨는 매일 2∼3시간밖에 안 자며 공부해 2005년 30 대 1의 경쟁을 뚫고 외환은행 현지 지점에 입행했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온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기뻐하셨죠. 한국계 은행에 들어갔다고 온 동네에 자랑을 하셨어요. 기회가 되면 한국에 꼭 같이 오자고도 하셨는데….”

김 씨는 3년 동안 현지에서 일한 후 우수 사원으로 선정돼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난해 7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씨가 그토록 원해서 왔지만 한국 생활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천 화재사고에서처럼 위험한 일에 종사하며 손톱이 빠질 정도로 일하는 동포가 많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 씨는 “지난달 한국을 찾은 부모님과 함께 설 연휴에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지역을 찾아갈 계획이라 설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사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