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통신요금 20% 인하’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스타일을 구겼다. 올해 초 “요금 20% 인하안을 1월 중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가 업계의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이어 착발신 양측에 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발신자 통화비는 줄여 줘도 수신자 부담은 늘리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식이어서 시민단체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결국 4일 요금 인하를 업계 자율에 맡기기로 하고 슬그머니 후퇴했다.
▷용의주도하지 못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돼버린 인수위의 일처리를 두고 한나라당이 ‘오버(over)했다’고 한 것은 후한 평가이고 일각에선 ‘오만’ ‘무지’란 혹평도 나온다. 요금체계를 둘러싸고 이동통신 가입자의 50.5%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SKT와 후발주자인 KTF, LGT가 어떤 갈등을 빚고 있는지, 정보통신부가 요금 인하를 강제할 수 있는지 등을 인수위가 몰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틈에 SKT는 4일 장기고객 할인 등을 발표해 인수위의 요청을 들어주는 듯 생색을 내면서 고객 굳히기 숙원사업을 일부 해결했다.
▷SKT의 방안은 SKT 가입자 전체로 보면 한 달에 1931원, 4.35%의 인하 효과에 그치지만 KTF와 LGT는 ‘약탈’이라며 반발했다. 장기고객에 대한 요금 인하를 통해 자사 고객은 붙잡아 두고 가족 간 통화요금 인하 등으로 후발업체 고객은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요금 인하를 요구해 온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는 “인수위가 민생문제인 통신요금 문제를 다루면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인수위 또는 새 정부가 ‘소비자 친화적’ 정책은 언제나 내놓을까.
▷인수위가 제시한 ‘통신요금인가제 9월경 폐지’ 방안은 규제 완화라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후발사업자에게 경쟁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 과제가 따른다. 지배적 통신 사업자에 대해서는 요금인가제 같은 소매 규제는 풀어주되,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다른 사업자에 망(網)을 개방하는 의무를 지우는 등 도매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