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발링스네스 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스웨덴은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수업을 통해 회화 중심의 실용영어를 가르침으로써 영어를 가장 잘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스톡홀름=김기용 기자
‘더듬더듬’ 초등생, 500시간 몰입교육후 영어 ‘술술’
《“What’s that?(저건 뭐죠?)” “Does elephant live only in Africa?(코끼리는 아프리카에서만 사나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8km 거리의 후딩에 지역에 있는 발링스네스 초등학교 4학년 교실을 찾았을 때 교사와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수업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어린이용 동물 다큐멘터리를 본 뒤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이들은 교사의 질문에 앞 다퉈 손을 들며 영어로 자연스럽게 답변했다. 교사는 가급적 말을 적게 하는 대신 아이들이 영어로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영어를 배우는 시간인 만큼 말을 자주 하도록 함으로써 언어 능력을 키우고 수업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4학년때부터 ‘영어로 영어수업’ 말문 틔워
교사에겐 신문-연극 등 활용 수업 자율권
美영화 원음 그대로 살려 ‘영어 노출’ 확대
국민 88% 교육통해 1개이상 외국어 구사
페테르 안게브란트 교사는 “아이들이 영어를 처음 배울 때는 더듬거리며 말하지만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며 “교사들이 참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금세 말문이 트이고 영어와 친숙해진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2006년 조사한 ‘모국어 외에 영어를 포함한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국민의 비율’에서 스웨덴(88%)은 룩셈부르크(99%) 네덜란드(91%)와 함께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유럽 평균은 50%, 프랑스는 45%였다.
2007년 4월 토플을 주관하는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2005년 9월∼2006년 12월 iBT 토플을 치른 사람들의 국적에 따른 점수를 비교한 결과 스웨덴은 120점 만점에 평균 95점으로 134개국 중 10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72점으로 111위였다.
▽자기주도학습 효과=발링스네스 초등학교 3학년 안톤(9) 군은 올해 가장 중요한 학습 목표로 영어로 된 영화를 보면서 스웨덴어 자막을 보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그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지만 아직 스웨덴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본다.
안톤 군이 이 같은 학습 목표를 정한 것은 스웨덴의 개인계발프로그램(IDP·Individual Developement Program)에 따른 것이다.
스웨덴은 2006년부터 모든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IDP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 학년 초마다 학생은 부모, 교사와의 상담을 거쳐 1년 동안 달성하고 싶은 학습 목표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가장 큰 목표 1∼3개와 과목별, 영역별 세부 목표를 작성한다.
일단 학생들이 IDP를 세우면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함께 학업 성취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학교에서 적극 지원한다.
담임교사 샤스틴(여) 씨는 안톤 군의 목표 성취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영어 교사와 수시로 효과적인 지도 방법을 상의한다.
그는 “안톤에게 무작정 영어 공부를 강요했으면 거부 반응이 컸을 것”이라며 “교사의 역할은 학생이 스스로 계획한 목표를 이루도록 재미있고 흥미로운 공부 방법을 찾아내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밀도 있는 영어 수업과 많은 영어 노출=10년 이상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우리와 달리 스웨덴은 체계적인 영어 교육을 통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스웨덴어가 영어와 어족(語族)이 같은 것도 스웨덴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명확한 교육 목표에 따른 자율적 영어 교육 △수준 높은 교사 △영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집중 교육 △영어 노출 시간이 많은 점 등을 ‘영어 강국 스웨덴’으로 만든 요인으로 꼽고 있다.
스웨덴의 영어 교육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된다. 이때 교사는 어려운 독해나 문법 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대화를 하기 위한 학습동기 유발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4∼6학년 3년간 배정된 영어 시간이 대개 480∼500시간이나 되고 영어 또는 제2외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영어로 가르치는 반이 학교마다 개설돼 있다. 3∼6학년의 4년간 영어 시간이 204시간인 우리나라 초등학교보다 영어 수업시간이 배나 많다.
스웨덴은 학교 영어 수업뿐 아니라 아이들이 영어에 자주 노출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갖추고 있다. 수입 만화나 영화의 대사가 스웨덴어로 더빙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어 원음을 살리는 대신 스웨덴어 자막을 덧붙인다. 아이들은 만화나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에 귀가 열린다. 초등 4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지만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에 노출돼 있다.
스톡홀름 시의 카스타니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아네트 호카넨(여) 씨는 “국가 교육과정 차원에서 영어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이 영어로 말하고 쓰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가르칠지는 전적으로 교사의 자율 권한”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자율권이 크기 때문에 영어 수업 형태가 다양하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연극으로 만들어 짧은 영어 연극을 하거나 다른 반 아이들과 영어 신문을 만들어 교환하기도 한다. 또 외국에 있는 학생과 편지 쓰기 등도 수업 시간에 자주 활용된다.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도록 하는 것이 교사의 능력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개별 학생의 준비 상태와 흥미도를 분석해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호카넨 씨는 “영문법이나 독해를 가르치기보다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실용영어 위주로 가르친다”며 “고교를 졸업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iBT 토플 성적 비교(120점 만점)순위국가평균점수(점)1네덜란드1022덴마크1013싱가포르1004오스트리아99
벨기에남아프리카공화국7노르웨이988독일96스위스10스웨덴95룩셈부르크포르투갈13에스토니아9414짐바브웨93아르헨티나우루과이아이슬란드슬로베니아호주111대한민국722005년 9월∼2006년 12월 iBT 토플을 치른 사람의 국적에 따른 점수 비교. 자료: ETS
스톡홀름=김기용 기자 kky@donga.com
■ 샌드그렌 교감 인터뷰
“영어 목표미달 학생 1주~2달간 개별지도 좌절 않도록 이끌어”
스웨덴은 과거 우리와 비슷하게 1∼6학년이 공부하는 초등학교와 7∼9학년이 공부하는 중학교로 구분된 지역이 많았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학교 통합을 통해 1∼9학년 학제로 바뀌고 있고 발링스네스 초등학교도 9년 전 1∼9학년 학교로 문을 열었다.
미카엘 샌드그렌(사진) 교감은 “학교 건물부터 아이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다양한 교육 방법을 통해 아이들이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학교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개인계발프로그램(IDP)을 영어 교육에 효과적으로 접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의논해 IDP를 정하지만 학교별 적용과 운영 방법은 학교와 학생 실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실시한다.
샌드그렌 교감은 “IDP를 작성하고 목적 달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중간 점검을 통해 이행 정도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별도의 특수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한 학생이 매일 영어로 일기를 쓰겠다는 IDP 목표를 세운다면 일단 담임과 영어교사가 적극적으로 돕는다”며 “만약 학생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추가로 다른 교사에게서 별도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발링스네스 초등학교에서는 이를 위해 따로 예산을 책정해 3명의 특수교사를 배치했고 특수교사는 별도의 교실에서 아이들과 짧게는 한 주, 길게는 두 달 동안 개별 수업을 한다. 이때 아이의 학습 태도와 친구 관계 등을 면밀히 분석해 학부모와 상의한다.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성취감을 느끼고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목적이다. 무리한 목표를 세우거나 남과 비교해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자기 수준에 맞게 공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
특이한 것은 1∼3학년, 4∼6학년, 7∼9학년을 묶어 혼합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혼합 수업을 하면 반드시 고학년과 저학년을 섞어 그룹을 만든다.
샌드그렌 교감은 “수업 중 모르는 것을 교사에게 물을 수도 있지만 옆에 있는 고학년생에게 물으면서 공부하게 된다”며 “학습 능력이 오르는 것 외에도 서로 유대감이 커져 따돌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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