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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교육혁명중]英 그레이그 시티 아카데미

입력 | 2008-02-13 02:50:00


민간단체가 100% 자율 운영…고졸시험 통과 4년새 2배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7km 떨어진 하링게이. 낮고 볼품없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허름한 차림의 흑인과 무슬림이 많아 전형적인 빈민촌처럼 보였다.

이 지역은 과거 영국에서 공교육이 붕괴된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였다. 이민자들이 많아 한 학교 안에서 아랍어부터 아프리카 줄루어까지 6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 비율이 70%에 달해 영어 수업조차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런 여건에서 모든 학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기존 공립학교로는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쉽게 학교를 떠나 슬럼가를 배회하면서 탈선을 일삼기 일쑤였다.》

희망이 없어 보이던 이 지역에서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형태의 중등학교 실험이 성공하면서 공교육이 살아나고 있다.

▽최신 경영기법 갖춰=아카데미는 정부 운영으로는 한계에 이른 학교를 최신 경영기법을 갖춘 기업 형태의 민간단체에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다.

2002년 3개로 출발했던 아카데미가 성공을 거두면서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83개로 늘어났고, 올해 9월까지 50개교가 추가로 문을 연다.

정부는 1개 아카데미에 초기 투자비용으로 400억 원을 지원하고 민간 투자자(sponsor)는 정부 지원액의 10%에 해당하는 40억 원을 대응 투자하고 학교 운영권을 갖는다.

스폰서는 교육 방법, 교과서 채택, 교육 과정, 교사 채용 등에 있어서 정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다. 단, 정부와 스폰서 간의 계약 기간인 7년 내에 2, 3차례 평가를 받아야 하고, 학업성취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학생은 지원을 받아 선발한다. 평가시험 결과를 5개 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에서 20%씩의 학생을 무작위로 선발한다. 자연스럽게 성적이 낮은 학생부터 우수 학생이 섞이기 때문에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학업성취도 쑥쑥=2002년 영국 최초의 아카데미 가운데 하나인 그레이그 시티 아카데미(GCA)는 지역 교회재단이 운영을 맡아 5년 만에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문자들이 대기하는 로비 벽면에는 영국 아동학교가족부 조사 결과 GCA의 성적이 영국 전체 평균을 넘어섰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전시돼 있다.

개교 직후인 2003년 고교졸업자격시험(GCSE)에서 다섯 과목 이상 A∼C학점(C학점 이상 받아야 통과)을 받은 학생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이후 2004년에는 26%로 더 떨어졌다가 △2005년 54% △2006년 59% △2007년 65%로 2004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평가에서 영국 전체 평균은 △2004년 53.7% △2005년 56.3% △2006년 58.5% △2007년 60.8%였다. 개교 당시 영국 평균의 절반에 머무르던 성적이 5년 만에 평균을 넘어선 것이다.

또 중학생에 해당하는 7∼9학년의 합격 비율도 크게 개선됐다. 영어의 경우 2003년 47%에서 2006년 65%, 수학은 34%에서 51%, 과학은 36%에서 54%로 껑충 뛰었다.

GCA의 놀라운 성과는 영국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체를 놀라게 했다. GCA가 교육시스템을 바꾸기 전에는 GCSE 통과 비율이 10% 수준에 불과했고 공립학교 수행평가에선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다.

데이비드 헤른 교감은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향상돼 지난해에는 영국 전체 평균을 넘어섰다”며 “다른 학교와 비슷한 수준에 오른 것만도 대단한 성과”라고 자랑했다.

▽출석률 높이기 성공=GCA는 개교 후 2년간 출석률을 높이고 정학과 퇴학 비율을 낮추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학생들이 범죄에 직접 가담하거나 폭력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도 많아 개교 당시 학생들의 출석률은 70%에 불과했다.

학교 측은 정부의 초기 투자비용 400억 원을 모두 투자해 건물을 완전히 리모델링 했다. 또 교복도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각종 기자재를 최신형으로 들여놓자 학생들도 자부심을 갖게 됐다.

9학년 코피 아우마(15) 양은 “학교 시설이 좋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공부할 의욕이 생긴다”며 “친구들이 우리 학교를 매우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100%클럽’을 도입했다. 1년간 100% 출석하면 연말에 100파운드(한화 18만 원 상당)를 현금으로 준다. 100%클럽 회원은 2006년 처음 3명이 나왔고 2007년에 8명으로 늘었다.

100%클럽 회원이 된 8학년 데렉 아담스(14) 군은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출석하게 됐는데 꼬박꼬박 학교에 가게 됐고 공부에도 재미를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3년 89.5%이던 출석률이 2006년 92.8%로 높아졌다. 정학 160명 퇴학 12명이던 학생 징계도 크게 줄어 지금은 퇴학생이 한 명도 없다.

▽“우수학교 따라 잡자” 자신감=GCA는 개교 초기 3, 4년간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노력한 것만으로 영국 최하위 학력을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GCA는 본격적으로 다른 평균 수준의 학교들과의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폴 서튼 교장은 “홈 튜터 제도와 지도교사제도, 개별교육 프로그램을 접목해 2007년부터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 튜터는 교사가 학생 25명씩 맡아 가정과 학교생활, 친구 관계 등 모든 면을 상담한다. 4개월마다 상담 결과를 분석한 뒤 특수교육을 전공한 지도교사들과 상의해 학생별 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방식이다.

서튼 교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평균 수준의 다른 학교들과 경쟁할 때”라며 “교과 과정 편성이나 교사 임용 등에서 자율권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아카데미(Academy):

아카데미는 2000년 3월 영국 토니 블레어 내각의 데이비드 블렁킷 내무장관이 발표하면서 공론화된 새로운 형태의 중등학교다. 주로 낙후되고 열악한 지역에 설립돼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페치 아카데니 다니엘 교장

“예의-질서 등 전통가치 회복 주력

학업성취도 높여 새 삶 개척 유도”

“현대 세계에서 전통적 가치를(Traditional Values in a Modern World).”

영국 런던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해크니에 페치 아카데미의 독특한 모토다.

2006년 개교한 이곳이 80여 개 아카데미 가운데 주목받는 것은 바로 예의와 질서, 배려 등 전통적인 가치관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아카데미가 ‘전통으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것은 지역적 특징과 관계가 깊다. 이 지역은 1000명당 발생하는 범죄 건수가 37.7건으로 영국 평균(24.9건)보다 훨씬 높을 정도로 치안 상황이 나쁘다. 낮은 소득 수준과 높은 범죄율 등으로 교육 환경은 최악의 수준이다.

데이비드 다니엘(사진) 교장은 “이 지역의 공립학교 대부분이 낮은 학업성취도와 졸업률 등으로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영국 교육계에서는 질서와 엄격함을 강조하는 우리 학교의 모토를 일종의 실험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가 3년간 개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공들인 것은 최고의 건물을 짓는 것이다. 여기에는 학교 명칭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스폰서 잭 페치(83) 씨의 의지가 깔려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교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자부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무조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환경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구름다리라고 불리는 건물 내 4층 통로에서 보면 모든 교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음침한 지역을 없애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항상 줄을 서서 다닌다. 식당으로 이동할 때는 물론이고 밥을 먹고 식당을 청소하는 것도 모두 학생들 몫이다. 식사할 때는 테이블당 6, 7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반드시 동석한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방법, 식사 예절 등도 교육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교장은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탈선 행위가 사라지게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런던=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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