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지방경찰청 3층에 최근 문을 연 현장증거분석실 입구에는 범죄현장에서 증거를 찾는다는 의미로 이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200여 m² 크기의 이곳에는 각종 장비가 들어서 있어 마치 대학의 실험실습실 같은 느낌을 준다.》
1억3000만 원을 들여 기존의 수사2계와 강력계 사무실을 합쳐 실험실형 사무실로 리모델링한 것.
실험실과 범죄분석 회의실, 시스템실로 구성된 이곳은 경북경찰 ‘과학수사(CSI)의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과 부산, 전북경찰청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마련됐다.
첨단과학을 동원한 증거 분석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미국 TV드라마 ‘CSI’ 시리즈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방식을 감안한 것이다.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는 범죄현장의 증거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활동을 뜻한다.
이갑수(경정) 과학수사계장은 “범죄현장에서 찾는 수사단서를 분초를 다투며 분석해 범인을 검거해야 하는데도 그동안엔 자체적인 능력이 부족해 무척 아쉬웠다”고 말했다.
증거분석실에는 점점 지능화되는 범죄에 대처할 수 있는 첨단장비와 인력이 갖춰져 있다.
실험실은 범죄현장에서 찾은 온갖 단서를 약품과 고성능 현미경 등을 통해 자체 분석하는 곳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기 전에 웬만한 증거분석을 할 수 있어 범죄해결 가능성을 높인다.
또 시스템실과 범죄분석 회의실은 범인이 남긴 어떤 흔적이라도 판독할 수 있으며, 옆에는 뇌파탐지기 등을 갖춘 거짓말탐지기실이 있다.
특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머리카락이나 먼지, 옷의 실 가닥은 물론이고 범인이 남긴 작은 흔적도 확인할 수 있는 고성능 전자현미경은 이곳의 자랑. 장비 가격이 3000만 원에 달한다.
증거분석실 요원은 17명. 경찰관이 12명이고 일반 직원이 5명이다.
이전에는 수사 경찰관이 주로 경험이나 ‘감’에 의존하던 검시(시신 검사) 분야도 임상병리사 등의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4명 채용해 처리하고 있다.
또 범죄현장과 범죄자의 복잡한 심리상황 등을 체계적으로 밝히고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하기 위해 범죄분석관 2명도 특별 채용했다.
중앙대 심리학 석사 출신인 신상화(33) 범죄분석관은 “강력사건 현장에는 다른 범죄를 예방하거나 발생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며 “범죄자의 심리상태 등 이상적인 언행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게 임무”라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와 몽타주 분야의 베테랑인 이무희(54·경위) 전문수사관은 “최근 도입한 탐지기는 호흡이나 혈압 상태는 물론 몸의 미세한 움직임과 목소리의 떨림까지 파악할 수 있어 거짓말탐지기의 신뢰도를 훨씬 높였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증거 중심 재판이 강화되는 데 발 맞춰 과학수사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장증거분석실을 전국 지방경찰청에 순차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경북지방경찰청 김수희 수사과장은 “강력범죄가 점점 전국화되고 있어 신속한 증거분석이 해결의 열쇠”라며 “과학수사를 위해서는 장비도 필요하지만 전문 인력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