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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충남경찰 ‘길 공부’ 삼매경

입력 | 2008-02-13 06:46:00


“관내 길(도로)에 대한 시험을 보는 전날 절도사건이 발생했어요. 주변 지리를 익혀 둔 덕분에 현장에 바로 출동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죠.”

충남 홍성경찰서 오관지구대 곽경원(25) 순경이 충남지방경찰청이 지난달 23일 실시한 ‘길 학습 평가시험’을 치른 뒤 제출한 소감문의 일부다.

곽 순경은 지난달 22일 오후 2시경 ‘홍성읍 고암리 H초등학교 인근 A 씨 집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했다’는 지령을 접했다. 주변을 순찰 중이던 곽 순경은 A 씨 집에 전화해 자신이 잘 아는 초등학교 건너편 주택을 지목한 뒤 “이 집을 기준으로 어디쯤이냐”고 물어 3분 안팎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어 다소 술에 취해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A 씨와 실랑이를 벌이던 절도범을 체포했다.

곽 순경은 “지난해 3월 경찰에 들어오면서 고향(대전)이 아닌 홍성에 배치돼 지리가 낯설었지만 수개월 동안 길 학습 평가에 대비해 종이에 H초교 주변 길과 주택 및 시설을 여러 번 그려 보아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충남경찰청이 지난해 1월부터 실시해 온 길 학습을 강화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1∼11월 112신고 접수 후 10분 이내 현장 도착 시간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0.8%포인트 빨라지고 살인 등 5대 범죄 현장 검거율이 29%가량 높아진 것도 길 학습의 영향이 크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경찰이 길 학습을 강화한 이유는 주변 지리를 속속들이 알아야 신속한 출동과 범인 도주로 차단, 외지인에 대한 길 안내, 교통 정체 시 차량 우회조치 등이 가능하기 때문.

충남경찰청 김해중 생활안전계장은 “특정 지역에 오래 근무한다고 해서 저절로 길을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습이 필요하다”며 “길 학습의 열기를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를 평가하고 성적 우수자에겐 해외 연수 등의 기회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길 학습의 대상은 주요 도로는 물론 농로, 산길, 마을 안길, 도심 골목, 그리고 이들 도로 주변의 상가와 주택 등 모든 시설이다. 신고자들에게 익숙한 자연부락 명칭도 숙지하도록 했다.

112 지령실 근무자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광역권 지리를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다.

그동안의 학습 결과로 이제 충남경찰이 그려내는 관내 지도는 공식 발행되는 지도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달 23일 평가에서 경찰관들은 직접 그린 지도에 도로 주변 인삼밭의 규모와 소유주, 인삼 종류 및 연령까지 기입했다. 축사의 경우 소유주와 가축 수, 사육기간까지 표시했다.

충남경찰청의 길 학습 프로그램이 경찰청에 보고되자 경기경찰청 등 다른 지역 경찰에서 벤치마킹을 위한 자료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조용연 충남경찰청장은 “군인은 전투를 위해 독도법과 지형지물을 익히는데 경찰은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길에 대해 공부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길을 정확히 알면 업무능률이 높아져 인원 증원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