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 들어주기보다는 채워 달라”
끊임없는 공부… 못말리는 독서광…
업무는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겨
“보고서 만들시간 없으면 말로 보고”
실용주의 코드 새 정부서 역할 주목
“내 가방을 들어주기보다는 채워 달라.”
조석래(73) 효성그룹 회장은 과거 퇴근길에 양손에 책과 가방을 들고 나가다 이를 보고 달려온 회사 임원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후 효성에선 ‘회장님’의 짐을 들어주려는 임직원이 사라졌다.
새 정부의 재계 측 경제파트너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
기업 친화적 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특히 활동이 눈에 띄는 조 회장의 이름 앞에 자주 붙어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재계에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안 건넌다’는 등 ‘보수적이고 깐깐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평가일 뿐 조 회장의 전체적인 모습과는 적잖은 거리가 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 공부하는 기업 총수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早稻田)대와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어릴 적 꿈은 이공계 대학 교수였다고 한다.
효성그룹의 한 임원은 “기본에 충실하고 업무에 철저한 조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10년 넘는 일본과 미국 생활에서 몸에 밴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미국 재계에 있는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도 오랜 유학생활에서 시작됐다.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그는 요즘도 스키를 즐길 정도로 남다른 체력을 과시한다.
이런 조 회장에 대한 ‘깐깐하다’는 세간의 평가는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그의 일본식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충대충 하는 것이 통 큰 경영으로 인식되는 우리 문화에서는 조 회장의 꼼꼼한 스타일이 부정적으로 비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임직원에게 ‘철저함’을 주문하기 위해선 스스로 완벽해져야 한다며 끊임없이 공부한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독서광(狂)’으로 불린다.
효성의 한 임원은 “(조 회장은) 늘 책과 신문을 끼고 다닌다”며 “쉬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효성의 경영방침인 ‘글로벌 엑설런스’도 ‘공부하라’는 말로 요약된다.
○ 격식보다는 실용 중시
회사 내에서 평소 조 회장의 모습은 미국식에 가깝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실용적인 사고와 행동을 한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사돈관계로 연결되기보다는 오히려 ‘실용주의’라는 코드로 연결되는 셈이다.
조 회장의 방문은 늘 열려 있다. 효성의 한 직원은 “회장실 문이 닫혀 있을 때는 회장님이 방에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보고 모습도 다른 기업과는 상당히 다르다. 아무리 직급이 낮아도 가벼운 목례 후에 곧바로 보고를 한다. 그마저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3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행사가 아니면 해외 출장을 혼자 다녔다. 효성의 한 관계자는 “회장님은 가방이나 들어주려고 직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이 구두(口頭) 보고를 선호하는 것도 그의 실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 조 회장은 임직원에게 “보고서 작성할 시간이 없으면 메모지에 몇 자 적어 와서 그냥 구두로 보고하라”고 주문한다.
재계 안팎에선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행보에서 조 회장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심이 크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