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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전막후]1, 2월은 대학로 ‘보릿고개’

입력 | 2008-02-14 02:58:00


1, 2월은 서울 동숭동 대학로 연극계에 춥고 배고픈 계절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중에서 초연작은 ‘무모한 이학순씨’ ‘룸넘버 13’ ‘블라인드 터치’ 등 단 세 편뿐이다. 나머지 공연들은 모두 재공연이나 오픈런 작품이다. 소극장 100개가 밀집돼 있어 ‘연극의 메카’로 불리는 대학로의 명성이 무색한 모습이다.

왜 1, 2월엔 이렇게 새로운 공연이 없을까. 관객은 오지 않고, 자금은 바닥에 이르는 ‘보릿고개’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연극계가 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의 기금을 지원받아 창작을 하는 것과 관련 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올해 118건에 34억3550만 원을, 서울문화재단은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44편의 공연에 17억2800만 원)의 자금을 연극계에 지원할 예정이다.

문제는 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이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지원사업을 공모해 각각 12월과 2월에 지원 선정 결과를 발표한다는 것. 제작비 5000만 원이 넘지 않는 소극장 연극에 편당 평균 3000만 원 정도가 지급되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액수다. 그래서 상업적 투자가 거의 없다시피 한 대학로 연극인들은 기금이 없는 시기엔 군색할 수밖에 없다. 봄가을에 객석의 절반 이상을 채워 주는 학생 단체관람객도 1, 2월엔 없다.

이 때문에 인터파크 예매 현황을 살펴보면 1, 2월에 공연되는 연극작품 67편 중 초연작은 6편에 불과하다. 2월 둘째 주 현재 공연 예매 상위 5걸 중 초연작은 하나도 없다. ‘라이어’ ‘서툰 사람들’ ‘늘근도둑 이야기’ 등 흥행이 검증된 작품들만 재탕, 삼탕된다.

문화계에서는 지난 10년간 계속된 정부기금의 연극인 직접 지원이 오히려 연극인들이 기금에 기대는 역효과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금이 아니라 관객 수익으로 생존할 수 있는 수작이 나오지 않는다. 대학로의 한 관계자는 “연극인 중 80%가량은 기금이 없으면 공연 올리기를 포기하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1, 2월에 무대가 한산한 것은 연극은 물론 무용, 국악 등 정부기금 의존도가 높은 예술 분야의 공통된 현상이다. 반면 연말에는 지원금을 받은 공연들이 ‘밀린 숙제’처럼 쏟아져 극장마다 난리다. 남기웅 서울연극협회 사무국장은 “일본의 경우처럼 3∼5년 정도 지원을 해준다면 1, 2월에도 좋은 초연작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업이나 금융권의 투자가 많은 뮤지컬의 경우 1, 2월에도 크고 작은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계속됐던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부기금 직접 지원이 문화인들의 자생력을 잃게 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새 정부의 문화예술 진흥 정책에 기대와 우려를 갖게 되는 이유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