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년 2월 14일 5대양을 탐험하며 대항해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하와이 원주민이 던진 돌창에 맞아 사망했다. 북아메리카를 통과하는 북서항로를 개척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일생은 ‘도전과 응전’의 집약체였다. 영국 요크셔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8세에 석탄 수송선 수습선원으로 바다 생활을 시작한 그는 27세에 수병으로 입대해 캐나다에서 벌어진 프랑스와의 7년전쟁에 참여했다. 이때 그는 북미 지역의 해역 측량, 일식 관측에서 두각을 보여 대위로 승진했고 위대한 탐험가의 여정을 시작했다.
1768년 그는 태평양 타히티 섬에서 금성의 태양면 통과를 관측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으며 일생의 무대가 될 태평양 탐험의 첫발을 내디뎠다. 세 차례 관측에 성공한 그는 지리학자들에 의해 추정되어 온 미지의 남방대륙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받고 제2차 남태평양 항해에 나섰다.
8년에 걸친 항해 끝에 그는 주위의 기대와 달리 미지의 대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남방을 탐험해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1773년에 남위 71도 10분에 도달해 당시로선 지구 최남단까지 항해했다. 남극해는 처음으로 보고된 미지의 바다였다.
쿡은 이 공로로 왕립협회 공식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대양항해의 걸림돌이었던 괴혈병을 예방해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았다. 왕립협회의 최고 영예인 코플리 메달도 받았다.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지구와 대륙과 대양의 형태를 발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의 망상이었다”며 “쿡의 항해는 있다고 전해져 내려온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업을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바르톨로뮤 디아스 등 대항해시대의 다른 영웅들과는 달랐다. 세상을 들썩이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고국에 금은보화를 안겨다 줄 새로운 무역 루트를 개척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축척’의 가치를 알았다. 이미 발견된 남태평양의 지리를 다시 꼼꼼히 탐사한 뒤 해도를 파악해 남태평양의 지도를 완성했다. 수년간 관찰한 끝에 괴혈병 예방에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크로노미터 정밀 시계를 통해 항해마다 경도를 측정했다. 이스터 섬, 통가 섬, 뉴칼레도니아 제도를 탐사하며 꼼꼼하게 항해일지를 남겨 이후 인류학, 지리학, 생태학이 발전하는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영국인들은 그의 공로를 기려 이름 앞에 ‘캡틴’을 붙인다. 지금까지 이 존칭을 붙여 부르는 이는 수중호흡기를 발견한 자크 이브쿠스토 등 두 사람뿐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