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수석디자이너 리드 크라코프 씨
겁 없는 시도였다. ‘구찌’의 알파벳 ‘G’, ‘루이비통’의 ‘LV’, 펜디의 ‘F’ 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유럽발(發) 명품 브랜드들의 알파벳 놀이. 세계 패션시장을 장악한 이들의 틈을 비집고 그는 2001년 데칼코마니 형태의 알파벳 ‘C’를 가방에 새겨 넣었다.
미국 핸드백 전문 브랜드 ‘코치(Coach)’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인 리드 크라코프(44·사진)가 새긴 것은 단순한 알파벳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화려한 유럽 명품 브랜드에 맞선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 그리고 유럽에 대한 미국의 도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미국 내 최고 기업(the best performing U.S. companies) 50’에서 코치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10년 만에 코치를 들어올린 1등 공신인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모든 게 예견된 일”이라며 10년 전 첫 출근 얘기부터 꺼냈다.
“수석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된 뒤 첫 출근 날, 모든 임원이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나를 맞이했죠. 정작 나는 청바지에 셔츠, 그것도 단추를 몇 개 풀어놓은 차림이었거든요. 우리 모두는 그때부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걸 서로 알아챈 셈이죠.”
1990년대 유럽 명품 브랜드들의 공습에 내리막길을 걷던 코치는 크라코프의 등장으로 핸드백에서 구두, 니트, 벨트, 심지어 향수까지 영역을 넓혀 나갈 수 있었다. 매장 역시 미국과 일본 단 두 나라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은 18개국, 400개 가까이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만든 알파벳 ‘C’ 덕분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힉스에게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가 만든 카펫과 벽지에는 터키식 타일이 서로 얽힌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거기서 착안해 ‘C’ 로고를 만들었죠. 뉴욕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은 이 브랜드에서 난 무언가 새로운 재미를 접목시키고 싶었습니다.”
1988년 캐주얼 브랜드 ‘폴로랄프로렌’의 고문 디자이너, 1992년 ‘토미 힐피거’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인 크라코프가 코치에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를 스카우트한 코치 그룹 최고경영자(CEO) 루 프랭크포트 덕분이었다. 점잖은 정장 차림의 프랭크포트는 유럽 명품 브랜드에 주도권을 뺏긴 브랜드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캐주얼’ 차림의 크라코프를 발탁했다.
썩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그는 크라코프가 외친 경영 화두인 ‘펀(Fun)’, ‘페미닌(Feminine)’, 그리고 ‘패셔너블(Fashionable)’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 디자인부터 마케팅, 광고 캠페인 등 모든 것을 그에게 다 맡겼다.
“일관성이 필요했던 거죠. 디자인, 광고, 마케팅 등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는 우리의 개성과도 같은 일관된 주제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는 다가올 10년을 시작하는 기념으로 모자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번 달 미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코치 모자는 특히 한국인 교포 모자 디자이너 유지니아 김과 공동으로 작업해 화제가 됐다. 그는 “한국은 무척 다양해 흥미로운 곳”이라며 한국 패션 시장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런 그에게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했다.
“도전(challenge), 도전, 그리고 역시 도전!”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