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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99년 佛대통령 포르 밀애 중 사망

입력 | 2008-02-16 02:57:00


프랑스 역대 대통령 가운데 7대 펠릭스 포르만큼 불명예를 남긴 대통령이 또 있을까.

후대 사람들이 그의 이름에서 떠올리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드레퓌스 사건이다. 포르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1895년. 육군 포병 대위였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몰려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은 다음 해였다. 군사 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겼다는 혐의였다.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희생양을 찾고 있던 프랑스 군부는 뚜렷한 증거도 없이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지목했다.

이듬해 참모본부 정보국의 조르주 피카르 중령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부터 프랑스는 둘로 갈라졌다.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요구하는 쪽과 반대파가 첨예하게 맞섰다.

포르는 여기서 반대파의 편을 들어 재심을 거부했다. 역사에 기록될 불명예스러운 결정을 한 것이다.

대문호 에밀 졸라는 1898년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로 시작하는 호소문을 싣고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거듭 촉구했다. 세계 지성사에 길이 남은 이 명문(名文)의 제목은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명예스럽지 못한 자리에 올라간 포르의 이름은 후대에서 졸라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계속 거론되고 있다.

포르는 1899년 갑자기 목숨을 거두는 과정에서 또다시 불명예를 기록했다. 1899년 2월 16일의 일이다.

이날 포르는 정부(情婦)인 마르게리트 스테네이를 엘리제궁의 밀실로 불러들였다. 스테네이는 화가 남편을 둔 유부녀였다.

스테네이가 밀실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밀실로부터 다급한 벨소리가 울렸다. 하인들이 달려갔을 때 포르는 소파에서 급한 숨을 내쉬고 있었고 몇 시간 뒤 목숨을 거뒀다.

엘리제궁은 대통령의 사망 사실만 알렸을 뿐 이유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소문을 막을 순 없었다. ‘하인들이 달려갔을 때 스테네이는 옷매무시를 고치고 있었다’ ‘포르가 연인의 팔에 안겨 최후를 맞았다’는 식의 얘기가 꼬리를 물고 확산됐다.

이 와중에도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공방은 계속 진행됐다. 포르가 사망한 지 4개월 뒤인 1899년 6월 고등법원은 드레퓌스에 대한 재판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재심을 명령했다. 드레퓌스는 얼마 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에 한 사람은 불명예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명예를 회복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