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석규씨가 출연한 SK텔레콤 광고. 통화품질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5일 공정거리위원회가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린 것을 전후해 800MHz 주파수 분배 문제를 놓고 SKT와 KTF LG텔레콤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KTF와 LGT 등은 이미 공정위 전체 회의에 앞서 “하나로텔레콤 인수는 SKT가 독점하고 있는 800MHz 주파수를 로밍 및 재분배를 전제조건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정위가 조건부 인수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키자 두 회사는 즉각 환영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SKT는 이에 반해 공정위 결정을 전에 없이 강도 높은 어조로 비판하면서 “하나로텔레콤 인수와 800MHz 주파수는 별개 문제”라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점 주파수 분배 요구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두 기업간의 합병을 앞두고 난데없이 주파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800MHz, 갖고 있는 것만으로 떼돈(?)”
국내 이동통신의 역사는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휴대통신이 본격화 한 것은 1996년 당시 셀룰러 사업자인 한국이통통신(현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LG텔레콤, 한솔PCS, 한국통신프리텔 등 PCS 3사는 1997년 10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정부가 SKT, 신세기통신 외에 PCS 3사를 추가로 선정한 것은 통신시장에 경쟁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였다.
SK텔레콤·신세기통신과 나머지 세 개 사업자를 가르는 기준은 주파수였다.
SKT 등은 800MHz를 사용했으며 LG텔레콤 등은 1.8GHz의 주파수를 사용했다.
하지만 PCS 사업자들이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파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SKT 등이 사용하는 800MHz는 직진성이 뛰어나 멀리 뻗어나가는 데다, 회절성도 좋아 도심 빌딩 숲에서도 깨끗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때문에 SKT 등이 기지국 1개를 세우는 장소에 PCS 사업자들은 2, 3개를 세워야 했으며 도심 음영지역 커버를 위해 별도 중계기까지 건물 내부 및 지하에 설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모두 역부족이었다.
가입자들 사이에서 “011만 잘 터지고 016 018 019는 안 터진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SKT는 본격적으로 ‘011’을 브랜드화 하기 시작했으며 명함에 ‘011’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가 찍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고개를 들었다.
1999년 말 SKT가 신세기 통신을 인수·합병 하면서부터 PCS 사업자들은 감정이 폭발했다.
과도한 출혈에도 불구하고 시장 1위 사업자 SKT와의 경쟁으로 무섭게 가입자가 늘고 있던 신세기통신은 모두 ‘갖고만 있어도 돈이 된다’는 800MHz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두 회사의 결합에 반대했지만 2000년 4월 공정거래 위원회는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하면서 그 때도 ‘조건부 인가’ 결정을 내렸다.
업계에서는 온갖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일부 PCS업체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 정권 말기 “SKT의 신세기통신 합병 인가는 DJ정부의 가장 큰 실수”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공정위가 내건 조건은 △2001년 6월까지 SKT의 시장점유율 50% 미만 유지 △계열사인 SK텔레텍의 단말기 구매 물량 제한 등이 핵심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SKT는 신세기 통신을 합병한 뒤 한 동안 신규가입자를 유치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인위적으로 시정점유율 낮추기에 들어가 공정위의 인가 조건을 충족시켰다.
올해 1월 현재 SKT의 시장점유율은 50.51%, KTF 31.52%이고 LGT는 17.97%.
KTF, LGT 역시 만만치 않은 수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SKT가 요금 책정 등에 대해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는데다 아직도 인위적으로 점유율을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PCS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800MHz 주파수를 사용하는 사업자가 아무런 제한 없이 1.8GHz와 경쟁할 경우 나머지 업체들은 고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가장 다급한 업체는 LGT
이런 분위기 속에서 SKT가 초고속 인터넷 2위 업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게 되자 PCS 사업자들은 과거 신세기 통신 ‘조건부 인수’를 떠 올리고 있는 것.
이 모든 게 “800MHz 주파수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PCS업체들은 “800MHz를 기반으로 얻은 SKT의 시장 지배력이 결합상품 판매 등을 통해 유·무선통신 시장으로 전이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로텔레콤의 2대 주주였던 SKT의 하나로 인수가 기정사실화되자 PCS 업체들은 ‘조금이라도 SKT의 지배력을 줄여보자’는 다급한 입장이 됐고, 공정위의 전체 회의를 며칠 앞두고 ‘아킬레스 건’인 800MHz 분배 요구안을 들고 나왔다는 게 통신 업계의 시각이다.
KTF의 경우 최근 ‘쇼’(SHOW) 브랜드에 집중하면서 기존 2세대 가입자들을 3세대인 WCDMA 가입자로 전환하는 데 전력 투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800MHz 주파수 분배에 대해 다소 여유가 있는 입장이지만 800MHz가 가져다올 통화품질 향상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반해 IMT-2000 주파수를 반납하고 기존 1.8GHz 주파수로 3세대 서비스를 하고 있는 LGT는 800MHz 분배 및 로밍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T 관계자는 “그 동안 서비스 질 향상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으나, SKT 기지국 설치만 허용되고 다른 통신 사업자들의 투자가 불가능한 군부대나 국립공원 등이 많아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라고 주장한다.
SKT 역시 800MHz 주파수를 반드시 수호하겠다는 입장.
SKT 측은 “기업결합 심사의 쟁점은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가 시장경쟁을 얼마나 제한하느냐를 살피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하나로텔레콤 인수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는 800MHz 주파수는 이번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일, 정통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날 한 사업자와 두 사업자 중 한 쪽은 울게 돼 있다는 것이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