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노인복지 프로그램이 전통적으로 기부 및 자원봉사 등과 같은 민간부문의 활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에 비해 유럽대륙 쪽 국가들은 정부가 이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의 경우 동일한 노인복지시설에도 개인이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입주자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를 받는 입주자가 서로 섞여 차별 없이 공존하고 있다.
반면 소득 수준이 더 높은 스위스는 사설 고급 시니어타운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위스 ‘테르티아눔’ 사설 시니어타운
스위스 취리히 인근 촐리커베르크 지역에 있는 테르티아눔 시니어타운에 거주하는 프리디 슈트리클러(83·여) 씨는 단독주택에서 살다 4년 전 이곳으로 옮겼다. 혼자 큰 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평생 독신으로 산 슈트리클러 씨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63세에 은퇴했고 이후 연금과 개인 저축금으로 생활해 왔다. 월 연금 수령액은 2140스위스프랑(약 184만 원).
그는 “여기는 가사로부터 해방돼 편안해서 좋고 문제가 있을 경우 항상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안심이 된다”며 “그러나 다른 거주자들을 의식해야 하는 것은 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 시설은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급 사설 양로원 중 하나다. 이곳에는 모두 76개의 개별 아파트가 있다. 규모는 방 1개부터 3개짜리까지 다양하다. 치매나 중풍 등 노인병 환자들이 이용하는 요양동에도 24개의 방이 있다. 전체 거주자는 115명이며 직원 71명이 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곳 거주자에게는 하루 한 끼 식사와 주 1회 세탁 서비스가 제공된다. 물론 집마다 부엌이 있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방 1개짜리 아파트 거주자는 월 4500스위스프랑(약 386만 원), 방 3개짜리는 월 9500∼1만 스위스프랑(약 815만∼858만 원)을 내야 한다.
하루 세 끼의 식사와 요양 서비스가 제공되는 요양시설 거주자들은 하루에 325스위스프랑(28만 원)을 기본으로 내야 하고 수발 서비스에 대해서는 시간당 65스위스프랑(약 5만6000원)을 부담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의사에게 받게 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부담은 별도다. 한마디로 부자 노인이 아니고서는 입소가 불가능한 것이다.
반면 시립 시니어타운의 경우 입주자가 부담할 능력이 없으면 시가 100% 부담한다. 시립의 경우 거주자가 받는 연금에서 월 800스위스프랑(약 69만 원)을 개인 용돈으로 제하고 나머지 돈을 원천 징수하는 방식이다. 만약 돈이 모자라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세금으로 부담한다.
거주자의 평균 연령은 85세. 최고령은 102세, 최연소가 74세이다. 자기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진 노인들이 시니어타운 입소를 희망하는 것이다. 현재 이 시설의 가동률은 100%. 입소 대기자도 100여 명이나 된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사설 시니어타운에도 대기자가 많은 것은 마찬가지다. 스위스 전역의 사설 시니어타운은 모두 60여 곳. 거의 모두가 취리히, 베른, 바젤, 제노바 등 도시 주변에 위치한 ‘근교형’인 것이 특징이다.
스위스의 2007년 현재 인구는 750만 명으로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24%에 육박하고 있다. 사설 시니어타운의 운영이 잘될 여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고령인구 비율이 높다고 시니어타운 시장의 전망이 계속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이 시설의 매니저인 마티아스 루츠 폰 리켄 씨는 “대기자는 많이 있지만 시설을 더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히 생각 중”이라고 소개했다.
고령화가 이미 많이 진행되어 인구가 차츰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미래의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시장 경기의 전망을 쉽게 낙관할 수 없는 것도 시설 확장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사설 시니어타운 수요자들은 재산을 주식이나 금융 등에 투자하고 그 수익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기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리켄 씨는 “시니어타운 시장은 노인 인구가 22% 정도 될 때 정점에 도달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아우구스트 슈툰츠’ 요양원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더베르크베크의 노인 요양시설인 ‘아우구스트 슈툰츠 첸트룸’에 거주하는 필리프 라이체르트(93) 씨는 수발 요양을 받고 있다. 그의 수발 등급은 독일 수발보험이 정한 3단계 중 가장 낮은 1단계로 하루 90분 이내의 수발이 필요한 경우다. 라이체르트 씨는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아직 별로 어려움을 못 느낀다. 단지 거동이 불편해 잘 걷지를 못한다.
그는 1년 전에 입소했다. 프랑크푸르트 근처의 작은 도시인 하나우에서 이발사로 일하다 은퇴 후에는 할인매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연금 수령액은 매달 1200유로(약 165만 원). 그는 아내가 먼저 사망하고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자 수발금고(DAK) 지역본부에 수발보험 수급 신청을 했고 심사기관인 건강보험의료심사원(MDK)에서 1단계 판정을 받았다. 요양시설 입소를 위해 4개월을 기다린 끝에 집을 처분하고 이 시설로 옮겨왔다. 이제 이 시설에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될 것이다.
그는 수발보험에서 월 1050유로(약 144만 원)의 보험금을 받는다. 2단계 판정을 받으면 1250유로(약 172만 원), 3단계는 1450유로(약 199만 원)가 지불된다. 하지만 그가 이 시설에 내야 하는 돈은 월 3500유로(약 480만 원)나 된다. 그가 받는 수발보험금과 연금을 합쳐도 모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월수입이 요양비용에 못 미칠 경우 해당 지자체가 사회복지수당으로 모자라는 금액을 보충해 준다.
인근 도시에 살고 있는 딸이 자주 오기는 하지만 자식보다는 이 요양시설의 수발담당 직원인 루스미르 데냐지크(41) 씨에게 더 의지한다. 친절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내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시설이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특히 콘서트와 연극공연 그리고 문학작품을 읽어 주는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
이 요양원은 독일 내 전국 규모의 민간 복지재단인 요하나 키르슈너 재단에 소속된 시설로 병원을 포함해서 수발요양원, 유로 시니어타운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241명의 노인이 수발요양을 받고 있다. 이들 중에는 재가 수발요양을 받다가 가족들의 사정으로 일시적으로 입소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발 서비스를 받지 않고 유로 시니어타운에 입주해 생활하는 노인들의 1인당 월 입주비는 700유로(약 96만 원). 이들은 직접 취사를 하기도 하고 시설 내 식당에서 한 끼에 5500원 정도를 내고 식사를 제공받기도 한다.
라이체르트 씨의 경우처럼 수발 판정을 받고 종신토록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독일의 수발보험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또 요양시설이 해마다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발 대상자를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1995년부터 수발보험을 도입했다. 모든 국민이 의무 가입하는 이 보험의 보험료는 월수입의 1.7%로 고용주와 가입자가 반반 부담한다. 독일 수발보험은 도입 4년 만인 1999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04년 현재 약 2000만 유로(1조1258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수발보험을 도입할 당시 2020년경 수발 대상자가 2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2003년에 이미 이 수효를 초과한 것이다.
이 시설 직원 마티아스 시크 씨는 “독일은 보험급여는 한정되어 있는데 노인층은 늘고 보험료를 내는 젊은 층은 감소하고 있어 수발제도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취리히·프랑크푸르트=정동우 사회복지전문 기자 fo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