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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서부전선 이상없다

입력 | 2008-02-20 03:03:00


《“다들 평화와 휴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모두들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가 다시 무산된다면 이들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토록 평화에 대한 희망이 간절하다. 평화가 오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 소설의 첫 다섯 번째 문장에서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전장터인데도 배불리 먹어) ‘만족스럽다’고 적혀 있다. 군인들은 전날 전방에서 교대됐다. 화자 파울 보이머와 친구들의 나이는 열아홉 살. 네 젊은이는 같은 학급에 다니다가 전쟁에 뛰어들었다.

뜨거운, 자발적인 의지에 불타서가 아니었다. 담임교사의 웅변에 끌린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채 스무 살도 안 된 사내들을 어찌나 몰아쳤던지, 첫 장(章)부터 사내들은 ‘흰 콩에다 쇠고기를 잔뜩 먹어 배불러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총 맞은 군인이 지척에서 피투성이로 뒹구는 것, 농담을 주고받던 동료가 느닷없이 말 못하는 시체가 되는 것 등을 이 사내들은 일찍이 겪었는데도…. 이들은 다치거나 죽은 동료들 ‘덕분에’, 식량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게 기쁘기만 할 뿐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898∼1970)는 ‘개선문’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등의 작품을 ‘세계명작’의 반열에 올린 소설가다. 많은 작품 중에서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소설이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완전한 예술작품인 동시에 의심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 평했는데, 이 명쾌한 찬사에는 이유가 있다. 레마르크 자신이 ‘서부전선…’의 주인공처럼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제1차 세계대전에 나선 것이다. 당연히, ‘서부전선…’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며, 작가가 생생하게 느낀 현장성과 감각으로 인해 ‘위대한 전쟁문학’으로 불리게 됐다.

이 책을 추천한 서남표 KAIST 총장은 “화자는 인간의 존엄성은 간데없고 오로지 생존 본능만이 무성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처절하게 답하는 작품이다. 학교를 다니다가 독일군이 된 젊은이들은 포화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물리 명제를 공부할 만큼, 전쟁이 곧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총성이 끊이지 않고 포화가 빗발치며 동료들은 눈 깜짝할 새 시체가 된다. 야전병원은 고통으로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부상병들로 가득하다. 전방의 군인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총을 잡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화자와 친구들은 차례로 죽어간다. 작가는 격정적인 문장이 아니라 지극히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것은 무감각해진 ‘전쟁 기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끔찍하게 느껴진다.

전쟁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는 것, 특히 현대전은 인간 삶의 모든 것을 망가뜨릴 정도로 파괴력이 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절감하는 바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쟁 선포를 포함해 모든 사항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 권한을 가진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상을 심각히 인식해야 한다”고 서 총장은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