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전야의 분위기가 마냥 경사스럽지만은 않다. 역대 대선에서 보기 드문 압도적 표차로 반대당 후보를 누르고 새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았다는 유권자의 들뜬 마음은 이내 숭례문의 방화 소실로 새까맣게 타버렸다. 게다가 불기둥이 새빨간 화재의 현장을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숭례문 복원은 2년에 200억 원 예산이면 된다는 어이없는 문화재청 간부의 발언이 사람들의 마음을 썰렁하게 하더니 그에 뒤질세라 대통령 당선인이 한술 더 떠 복원비용은 십시일반 국민 성금으로 하자는 ‘빨리빨리’ 방법론까지 제시해 더욱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이름 있는 문화유산 전문가를 문화재청장으로 모셔왔을 때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국민의 기대는 높았다. 그가 문화재인 왕릉 안에서 가스 불을 피워 불고기 잔치를 했을 때도 처음 일이라 사람들은 눈감아 주었다. 그러다 2005년 감사원에서 ‘국보1호’를 숭례문 말고 ‘문화재적 가치에 따라 재지정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월권의 권고방침을 밝혔을 때 우리 문화재청장은 “전부는 못해도 국보 1호는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화답하고 나섰다. 나는 하도 마음이 답답하고 다급해서 ‘국보 1호는 국보 1등이란 뜻이 아니올시다, 그건 국보등재 순위일 뿐이올시다’라고 간곡히 이 칼럼에 적어 국보1호 재지정 논의를 가까스로 잠재울 수 있었다.
잘못 선택해도 5년간 못바꿔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여러 번 하면 잔소리다. 1970년대에 재건한 광화문이 원래의 위치에서 몇 미터 비켜났다는 매우 유식한 고증을 바탕으로 박정희 광화문을 헐고 노무현 광화문을 원위치에 ‘복원’하겠다며 지금 경복궁 앞은 온통 울긋불긋한 거적이 씌워져 있다. 그 꼴이 보기 민망하지만 잔소리는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 유식한 ‘원위치 고증학’을 따르자면 덕수궁의 대한문도 시청 앞 서울 광장으로 전진 배치해서 복원해야 하고, 서대문의 독립문도 고가도로 밑의 옛 위치로 이전 복원해야 맞다. 국보 1호의 복원 공사를 계기로 장차 우리나라는 ‘건설강국 대한민국!’에서 ‘복원강국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일까?
문화재청장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고위관리를 잘못 뽑은 책임은 인사권을 쥔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그 대통령을 뽑은 것은 그러나 우리들 국민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면 그 책임이 국민에게 있다 해도 할 말은 없다.
문제는 그러나,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는 도대체 사람을 뽑는 일이 쉬운 일이냐 하는 것이다. 한 장관, 한 청장을 뽑는 것도 그렇다. 여러 통로를 통해 인재들을 천거 받고 인사 전담기구에서 인품과 경력을 검증해 몇 차례 걸러 낸 뒤 복수 추첨해서 낙점된 인사도 막상 자리를 맡기면 안심할 수가 없다. 하물며 일반 국민이 인사 전담기구의 도움도 없이, 잘못하면 갈아 치울 수 있는 장차관이 아니라, 한번 뽑으면 5년은 버티고 있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지.
만일 학술원장 예술원장을 국민이 ‘직선’하자고 한다면 찬성할 사람이 많을까. 그거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고 다스리는 대통령의 자리가 학술원장 예술원장 자리보다 비전문적인 일을 하는 자리일까.
학술 예술에는 모든 국민이 관여도 않고 관심도 안 갖는다 해도 정치에는 모든 국민이 관여하고 관심도 갖는다. 그렇다면 그럴 경우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는 분야의 수장은 꼭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뽑아야 하나.
꼭 직선제로 뽑아야 하나
교육은 모든 국민이 관여하고 지대한 관심을 갖는 분야이며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도 가장 높다는 것이 정평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도 교육부의 수장을 국민이 직선하자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
어떨까. 이 나라 정치의 수장인 대통령을 뽑는 지난한 일은 더는 여유도 없고, 전문경력도 없고, 죄도 빚도 없는 국민을 괴롭히지 말고 우리가 국회에 뽑아 보낸 정치 전문의 선량들이 맡아 해주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대선, 총선 두 번씩이나 큰돈 들여 전국이 난리 법석을 피우지 않고 국회에서 의원내각제 정부를 마련해 낼 수도 있을 텐데.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