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각, 최후의 20년/루젠둥(陸鍵東) 지음·박한제 김형종 옮김/820쪽·3만9000원·사계절
“100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세기난우(世紀難遇)의 기재였다.”
저자 루젠둥은 20세기 초 중국의 대표적 학자인 천인커(陳寅恪·진인각·1890∼1969)를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천인커는 ‘학자를 가르치는 학자’로 불렸다. 이념 투쟁이 대륙을 휩쓸던 정치적 격랑기에 그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학문에만 정진했다. 어린 시절 경학, 사학, 철학을 공부한 그는 가족을 따라 일본 미국 유럽을 돌아다니며 서구의 언어와 사상까지 접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의 대륙 장악이 임박하자 국민당 정부는 당대 최고 학자들을 대만으로 이송하는 작전을 펼쳤으나 천인커는 중국에 남았다. 이 책은 그때부터 천인커의 마지막 20년을 기록한 평전이다. 천인커 개인에 대한 기록을 넘어 그를 통해 당시 중국 지식인 사회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대륙에 남은 천인커는 역사연구위원회의 중고사연구소 소장으로 지명됐으나 ‘단지 학문을 물을 뿐 정치는 묻지 않는다’는 원칙을 들며 이를 거부했다.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관롱집단설(關(농,롱)集團說)’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수나라, 당나라는 순수한 한족의 나라가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호족(이민족)과 한족이 결합해 탄생한 혼혈족이 세웠다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중국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문만을 추구했던 그였지만 시대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1957년에는 우파로 몰려 핍박을 받았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고초를 겪었다. 그는 시력을 잃은 뒤에도 부인과 조교의 도움을 받아 연구에 매진하다 1969년 세상을 떠났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