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거의 볼 수 없는 외진 산길에서 순직한 그 사람이 발견됐습니다. 집배원의 목적지였던 산골 마을로 가는 길에는 큰 강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강추위로 강물은 결빙되었고, 닳고 닳은 등산화를 신었던 집배원은 얼음장 길을 바쁘게 가로질렀습니다. 그러다 강 한가운데에 이르러 그만 미끄러지면서 얼음 구멍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낡고 초라한 우체국 건물 앞에서 그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집배원이 멨던 우편배낭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우편배낭을 가득 채웠던 내용물은 공교롭게도 집배원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편지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온 대상들에게 보내는 글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는 긴 코 하나로 못하는 것이 없는 코끼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자가 되어 대평원의 동물들을 호령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혹은 말이 되어 천리 길도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었고 시계 없는 마을의 닭이 되고 싶었으며, 개 없는 마을에 거위가 되어 빈집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그의 꿈은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곡마단의 피에로가 되어 구경꾼들의 허파가 뒤집히도록 웃기고 싶었고, 밀가루 반죽 속에서 국수를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되어 출입국 때마다 공항이 비좁도록 카메라맨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습니다. 또는 두 손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 중에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없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그는 또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기쁨도 누려야 하겠지만, 그 기쁨의 부피만큼 슬픔도 있어야 하고, 성공이 있으려면 먼저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내와 갖은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많은 직업 중에서 남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나 혼자 걸어야 하며, 엄동설한에도 산길 외진 곳 바위에 혼자 앉아 싸늘하게 식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집배원이 된 것입니다.
그의 우편물을 건네받은 사람 대다수는 웃었고, 걸핏하면 울었기 때문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하루에도 몇 번인가 거듭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노파에게 대신 편지를 읽어 주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을 듣고 눈물 글썽이는 노파의 찬 손을 어루만져 주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배원 생활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즐거웠습니다. 불행도 그와 부딪치면 언제나 기쁨으로 변하는 조화를 부렸습니다.
작가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