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뭐랄까요,
왼손 반주 없이
오른손으로만 연주하는 피아노의
소리만 같습니다. 그만큼
섬세하고, 가냘프고, 시적이며,
생각할 여백이 많은 영화죠.
영화 ‘토니 타키타니’(2004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한 존재감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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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하다 고로 쇼핑한다’ 현대인 마음속의 결핍과 고독
[1] 스토리라인
‘토니 타키타니’는 평생을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너의 그림에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는 각종 기계의 모습을 숨이 막힐 만큼 정교하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합니다.
토니는 ‘에이코’(미야자와 리에)란 여성과 결혼합니다. 단아하고 선한 에이코에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명 디자이너의 옷과 구두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쇼핑 중독.
700여 벌의 의상으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에이코는 쇼핑 충동을 억누르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다시 옷을 사들입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차를 몰던 그녀는 교통사고로 숨지죠.
토니는 다시 고독 속으로 빠져듭니다. 신문광고를 냅니다. ‘165cm의 키에 230mm의 발, 옷 사이즈 7호를 입는 여성을 사무실에 채용하겠다.’ 이내 아내와 완벽하게 똑같은 신체 치수를 가진 ‘히사코’(미야자와 리에 1인 2역)란 여성이 찾아옵니다. 토니는 죽은 아내의 옷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해 달라고 그녀에게 요구합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명품 옷만 사는 에이코는 시쳇말로 ‘된장녀’일까요?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을 과시하고자 쇼핑을 하는 게 아닙니다.
“왠지 옷이란, 자기 내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에이코가 토니에게)
그렇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독과 부족한 존재감을 메우기 위해 옷을 사고 또 샀습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을 운명처럼 괴롭히는 고독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녀는 쇼핑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내레이션)
여기서 우리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에 접근하게 됩니다. 현대인이 보여주는 쇼핑 중독은 마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현대인이 벌이는 안타까운 몸부림이란 것이죠.
토니도 에이코와 다를 바 없습니다. 에이코가 쇼핑을 통해 고독을 극복하려 했다면, 토니는 기계를 극사실적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고독감으로부터 헤어나려 발버둥쳤습니다.
고독감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애써 결별하고자 했던 토니의 강박적 무의식은 그로 하여금 인간적 감성이 일절 배제된 ‘차가운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었던 것이죠.
[3] 더 깊이 생각해 볼까?
토니가 죽은 아내와 똑같은 체형의 여성을 구해 아내의 옷을 고스란히 입힌 이유는 뭘까요? 죽은 아내를 ‘복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아내를 잊기 위해서였지요.
“당신이 아내의 옷을 입고 있으면, 오히려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토니가 히사코에게)
아내가 입던 옷을, 아내와 똑같은 체형의 다른 여성이 입은 모습을 보면 ‘아, 정말 아내는 이 세상에 없구나’ 하고 더 또렷이 체감할 수 있게 될 거란 생각을 토니는 했습니다. 하지만 토니는 아내를 지우지 못합니다. 아내의 영혼이 깃든 수많은 옷은 그 자체로 아내의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결국 토니는 아내의 옷을 모두 처분하는 방법으로 그녀의 영혼과 이별하려 합니다.
“고독이란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토니는 생각했다.”(내레이션)
고독은 현대인의 운명을 옥죄고 있는 감옥일지 모릅니다. 에이코가 700여 벌의 옷을 가득 채워 넣었던 방은, 현대인들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쓸쓸한 감옥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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