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생활환경은 점점 디지털화하고 있죠. 그러나 변화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추억 뒤편에 머물러 있는 아날로그의 기억을 꺼내어 보려고 합니다.》
디지털 전도사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사진)는 20대에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가 전혀 다른 영역인 영화와 음악 산업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픽사를 만들어 3D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에 버금가는 영화계의 거물이 되었고, 아이팟으로 음악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그는 항상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산업의 선두에 섰다. 뛰어난 창의력과 미래를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 덕분이다. 애플 컴퓨터가 그랬고, 3D 애니메이션이 그랬다. 그러나 아이팟은 조금 달라 보인다. 아이팟이 출시될 무렵에는 이미 다양한 엠피3 플레이어가 시장에 나와 있었고,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곳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단지 조금 더 예쁘고 더 넓은 저장 공간을 가진 아이팟 하나만 들고.
지금 음악 산업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음반 회사들은 온라인으로 음반을 내려 받을 수 있게 디지털 음원을 제공하고 있다. 냅스터가 음반 불법 복제의 온상이라며 서비스 중단을 외치던 때가 얼마 전인데, 이제 자발적으로 음악의 디지털화에 나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과 연결된 아이튠에 음반을 내려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불법적으로 유통되던 디지털 음악을 양지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음반회사와 수익을 나누었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에도 밥 딜런을 흥얼거릴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도 종종 그의 노랫말을 빌려 쓰곤 할 정도였다.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오디오를 사지 않아요.” 어쩌면 그는 돈 맥클린의 가사처럼 ‘음악이 죽는 날’이 다시 올까 두려워했을까? 그는 음악이 언제나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기를 원했다. 심지어 레코드판에 묻혔던 옛날 노래들까지도. 그리고 이곳이 무언가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는 예감도 번뜩 스쳤을지 모른다.
음악에 대한 열정. 그는 단지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다. 그것이 음반 산업의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이라면 심한 비약일까?
디지로그라고 했던가,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디지털 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요즘의 추세라고 한다. 여기에 스티브 잡스와 같은 열정이 더해진다면, 앞으로 만날 디지털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 마음이 설렌다.
이현 동아사이언스 전산기획팀장 dole@donga.com
▼이현 팀장은▼
1987년에 한국경제신문사의 케텔(KETEL)에 접속하면서 네트워크 세상과 인연을 맺었다. 그 무렵 학교 전산원의 VAX 시스템에서 인터넷 이메일을 보내는데 성공해, 인터넷이 별 거 아닌 줄 알았다. PDA, 미니노트북 컴퓨터, 무선 인터넷 등 디지털 세상을 누구보다 먼저 만나야 한다는 강박증도 앓았지만 부족한 자금 덕분에 자연히 나았다. 지금은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 포털 기획과 운영을 고민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북적대는 바람에 이곳 서버가 마비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소박한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