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경악할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슬람 신정(神政)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탈레반 무장 세력이 불상 파괴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아프간 집권 세력이었던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 물라 마무드 오마르는 이날 발표한 포고령에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모든 불상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다.
1500여 년 전 불교 간다라미술이 개화했던 아프간에는 찬란한 불교 유적이 많았다.
지구촌은 특히 2세기경 만들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바미안 마애석불(磨崖石佛)이 처한 운명에 주목했다. 수도 카불에서 서북쪽으로 230km 떨어진 바미안의 사암 절벽을 깎아 새긴 2개의 마애석불은 헬레니즘 미술의 영향을 받은 걸작으로 크기가 각각 53m, 37m에 이르렀다.
유네스코는 석불 파괴를 막고자 아프간에 특사를 보냈다. 불교국가와 서구 선진국은 물론 탈레반의 맹방인 파키스탄과 이슬람회의기구(OIC)도 불상 파괴령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부는 외국 취재진의 접근을 통제한 가운데 “불상 파괴 작업이 3월 1일 오전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유엔 189개 회원국은 9일 탈레반 정권의 불상 파괴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미 4일부터 “바미안 석불이 산산조각 났다”는 소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국 CNN은 12일 바미안 석불 2개가 폭파되는 순간을 담은 충격적인 사진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의 암반 파괴 전문가들을 동원해 다이너마이트로 석불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괴된 석불의 잔해는 파키스탄과 일본으로 밀반출됐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서구 세계의 고립 전략으로 경제난을 겪게 된 탈레반 정권이 국면전환용으로 빼어든 무모한 카드라고 불상 파괴를 해석했다.
오마르는 2004년 4월 파키스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외국인이 찾아와 바미안 석불이 오래됐으니 보수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프간에는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돌덩이에 불과한 불상 따위를 걱정하는 냉혈한들을 보고 불상 파괴 지시를 내렸다.”
탈레반의 불상 파괴는 자연 재해보다도 종교나 정치를 둘러싼 인간들의 갈등이 문화유산에 더욱 무서운 적임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었다.
현 아프간 정부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바미안 불상 재건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첨단 기술을 동원해 불상을 재건하더라도 1500년 넘게 풍상을 견뎠던 예전의 석불과 같을 수는 없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