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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경제]귀 솔깃하게 하는 ‘정보의 폭포’ 탓

입력 | 2008-02-27 03:00:00


■ 사례

태석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좋아하는 게임도 마다하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간식을 들고 방에 들어온 어머니가 이유를 묻자 힘없이 대답했다.

“○○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정리하는 수행평가 과제를 해야 하는데, △△사업이 필요한 건지 아닌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요. 참,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난들 알겠니. 인터넷을 뒤져 보지 그러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태석이는 ○○시의 홈페이지와 관련 카페에서 발견한 많은 글 가운데 눈에 띄는 것들을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게 좋은지 어떤지를 판단하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고민 끝에 그는 사업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정리해서 수행평가 과제를 마무리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어머니께서 왜 △△사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를 태석이에게 물어보자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인터넷에 사업을 찬성하는 글보다 반대하는 글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나도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게 옳다고 결론지었어요.”

어머니는 태석이의 대답이 어이가 없다는 생각에 한마디했다.

“너는 네 나름대로의 평가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수의 생각이라고 무작정 따라가니?”

다음 날 태석이 어머니는 TV 광고에서 본 신제품 화장품을 사려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화장품 매장에서 어머니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신제품 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태석이 어머니는 다른 고객들이 주로 사는 화장품을 눈여겨보았다가 자신도 같은 화장품을 구입했다. 다른 고객들이 그 화장품을 산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석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제 저녁 아들 모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별수 없네.”

어머니의 입에서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 이해

낯선 곳에 갈림길이 있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자. 운전자들은 안타깝게도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해 어느 길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

첫 번째 운전자가 왼쪽 길이 옳다고 판단하면 당연히 왼쪽으로 갈 것이다. 만약 두 번째 운전자 역시 왼쪽이 옳은 길이라고 판단하면 그도 왼쪽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운전자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오른쪽 길이 옳지만, 왼쪽 길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이미 두 명이나 왼쪽 길을 선택했고 그들은 좋은 정보에 의해 왼쪽 길을 선택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길이 옳다는 자신의 개인 정보가 왼쪽 길로 들어선 앞선 두 사람의 선택에 의해 압도당해 앞선 사람의 선택에 휘말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정보 폭포 현상’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따라하기 선택이다. 앞선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에 휩쓸려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게 현대 경제의 특징이지만 정작 본인이 지니고 있는 정보는 불완전해 확신을 갖고 선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추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또한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특별한 점이 없는데도 인기를 끄는 상품이 있다. 일부 소비자가 먼저 구입하는 것을 보고 다른 소비자들이 따라 구입해 유행이 된다.

주식시장에서도 어느 기업 주식에 대한 매입이 강세를 보이면 “그 주식은 매입할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게 했던 자신의 개인 정보를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받아들여 해당 주식을 따라 매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 폭포 현상은 유행, 군중 동조화,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 버블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인터넷에 다수의 글을 의도적으로 유포시키는 행위는 정보 폭포 현상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바람잡이들을 동원해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자사 상품에 대한 좋은 평가를 퍼뜨리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진 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