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북한 이란 시리아 쿠바 등의 지도자와도 직접 만나 협상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제안이 국익의 관점에서 얼마나 현실적이고 현명한 것인가 하는 점인데, 나는 오바마 후보의 발언이 다소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북한과 같이 다루기 어려운 나라와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정상 간 직접 접촉, 즉 정상회담은 성공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없다.
정상회담 역시 다양한 외교적 노력의 하나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긴 하지만 그 경우라도 우방들과 함께 정상회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면밀히 따져본 뒤 추진하는 것이 현명하다.
더더구나 국익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전제로 이뤄지는 다른 협상의 진전을 저해하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바마 후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문제가 있는 지도자’들과의 직접 협상론을 들고 나온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취임한 뒤 중동 평화협상을 중단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를 악화시켰고, 북한 김 위원장을 모욕하거나 무시하는 언사를 보여 핵무기용 플루토늄의 추가 추출을 막지 못했다.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도 사태를 수렁으로 몰아갔다.
오바마 후보는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대담한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 정권’과의 협상은 상대방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상대방과 서로의 국익을 교환할 준비가 돼 있을 때라야만 가능하다.
정상 차원의 외교는 사태 악화를 막고 상호 간 긴장을 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당근과 채찍의 조화로운 사용이 정상 간 대면보다 외교적 목표를 이루는 데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 면담은 제1차 북한 핵 위기를 해소하고 제네바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의 도출은 “북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군사작전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의 공개적인 위협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의 진전도 정상외교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보여 준 중국과 한국 정부의 강경해진 대북 태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우리는 1999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나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밀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정상 간 직접 외교를 추진하는 데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도자들의 위신을 너무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 정상회담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지나치게 높여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상외교를 통한 성과를 바라는 대중의 압력이 커질수록 독재국가와의 협상에서는 불리한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국가의 지도자들은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데 익숙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될 지도자가 이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 양국 국민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결과 도출을 지나치게 재촉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을 차분히 지속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