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홍찬식]재산 환원

입력 | 2008-02-29 02:56:00


이문열의 소설 ‘선택’에는 조선시대 선조 때 실존 인물인 장씨 부인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돕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아침마다 비복을 풀어 마을을 돌아보게 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것은 끼니를 거른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런 집에 무턱 댄 동정으로 곡식부터 디밀지는 않았다. 먼저 그 집에서 일할 만한 사람을 불러 무언가 일을 시키고 품삯으로 곡식을 보내 주었다.’

▷일제강점기 평양 굴지의 부자로 백 과부라는 여성이 있었다. 16세 때 남편과 사별한 뒤 평생 홀몸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수전노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그는 환갑을 맞던 해에 비로소 자선활동을 시작했다. 학교에 거액을 기부하고 평양 시내에 큰 공회당을 세웠다. 그가 1933년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회에 기부한 돈은 요즘 돈 가치로 300억 원이 넘었다. 전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고 떠난 것이다. 그의 장례식에는 평양 시민 1만 명이 참석해 애도했다.

▷이처럼 자선과 기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왔을 때 아름답다. 엊그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선 재산 환원과 관련된 거북한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재산이 140억 원에 이르는 유 후보자에게 “연극인을 위해 사재 출연 의사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유 후보자는 바로 “있다”고 대답했다. 손 의원의 질문은 청문회장이라는 자리의 성격상으로도 적절치 않았다. 유 후보자가 ‘없다’고 답했으면 또 어떤 추가 질문을 했을까. 손 의원 자신은 많건 적건 간에 세상을 위해 사재를 출연한다든지, 아름다운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 후보자가 기부를 해도 연극인들이 내켜하지 않을 것 같다. ‘강요된 기부’나 ‘대가를 바라는 기부’는 아름답지 않다. 도움 받는 쪽의 기분도 배려할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받는 사람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던 순박함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들의 자발적인 기부 문화가 꽃피어야 하겠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강압하듯 몰아가는 것은 볼썽사납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